신체에 열자극을 주기 위해서 그간 쑥뜸을 이용해 왔다. 그런데 침구학의 경전(經典)이라 불리는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도 뜸에 대해서는 많은 내용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황제내경』의 이법방의론(異法方宜論)에 보면 “북방 사람들은 찬 곳에서 생활하므로 냉병이 많아 쑥뜸을 떴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송나라 때 뜸경이라 불리는 의서(醫書) 『자생경(資生經)』에 뜸법 처방이 수록되고, 그 후 뜸 자극이 성행했다. 그 내용은 명나라 때 저술된 『침구대성(鍼灸大成)』에 인용됐고, 허준(許浚)도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인용했다. 이 내용을 근거로 환자를 자극한 경험방을 쓴 것이 허임(許任)의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이다. 허임은 조선시대 인조(仁祖)의 침구의로 있으면서 뜸 치료를 주로 했다. 그러나 인조는 뜸 시술을 싫어했고, 대신 이종익(李鍾益)의 번침법(燔針法: 불침)을 좋아했다. 그 후 두 사람의 알력이 생겼을 때 인조는 허임을 양평부사로 제수해 궁중에서 내보냈다. 그 후 일제 때는 일본의 침구사(鍼灸士) 제도를 받아들여 시행하게 됐으며,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 침구학원이 생겼다. 1951년에 부산에서 국민의료법이 제정됐을 때 당시 세력 있던 한약업자(당시 한약종상)들이 한의사 제도를 만들었다. 그리해 막연히 한방의학이라고 하던 것을 확대 해석해 오늘날 한의사가 침·뜸을 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제 시대에 면허를 취득해 현재 남은 침구사는 몇십 명에 불과하다. 침사가 뜸 시술까지 하고, 구사가 침 시술까지 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다. 『황제내경』을 인용한 『동의보감』에서도 “침하면 뜸하지 못하고, 뜸하면 침하지 못한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침과 뜸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동의보감'에서는 용의(庸醫: 돌팔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동안 침술의 효과는 과장·미화돼 전 세계로 확산됐고, 국내에서도 침구사법 쟁탈전이 일어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침·뜸에서 말하는 경락계통은 과학적으로 전혀 입증되지 못한 상태다. 현대 의학·과학으로는 대부분 인체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데, 유독 한의학과 침구 경락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해명되지 않은 채 막연히 ‘좋다’는 기대만으로 시술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
Copyright @보건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