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부항 시술 놓고 극단적 갈등

의협 “한의사 고유영역 근거 없다… 한의사들 현대의료기기 사용 맞대응”
한의협 “건강보험법상 한방의료행위로 등록… 명백한 불법의료행위 확인”
수지침학회 “황제내경 부항이란 말 없다… 민간요법 한의학 범위 아니다”

의사협회가 부항 시술과 관련 자문을 구하기 위해 수지침학회에 보낸 협조 요청 공문(왼쪽)과 이에 대한 수지침학회 회신공문(오른쪽). 수지침학회는   
▲ 의사협회가 부항 시술과 관련 자문을 구하기 위해 수지침학회에 보낸 협조 요청 공문(왼쪽)과 이에 대한 수지침학회 회신공문(오른쪽). 수지침학회는 "한의사와 부항은 일체 관련이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민간요법으로 전래되어온 부항 시술을 한의사가 아닌 일반인이나 의사가 하면 불법의료행위이다?

한방물리치료 보험급여,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등으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대한의사협회(회장 경만호)와 대한한의사협회(회장 김정곤)가 이번에는 부항(附缸) 시술 문제로 극단적인 갈등을 보이며 전면전으로까지 불붙을 조짐이다.

부항 시술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화된 민간요법의 하나로 국민의 다수가 부항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 자가 시술을 하거나 시술에 대한 지식수준과 경험 등이 있는 시술자를 통해 시술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한의사들은 부항 시술이 한방의료행위라며 한의사가 아닌 자가 부항 시술을 할 경우 무면허의료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의사들은 일반인들도 가정에서 기구를 구입해 부항 시술을 하고 있으며, 민간요법의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행위인데 이를 한의사의 고유영역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와 한의사 간의 부항 시술 갈등은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경 한의사협회 소속 직원을 환자로 가장시켜 전라도지역 한 의료기관을 내원하게 해 부항 시술 장면을 사진촬영하고 이를 근거로 해당 의료기관과 시술자를 경찰에 형사고발하면서 본격 불거졌다.

이 사건은 현재 경찰 조사가 끝난 상태지만 검찰의 처분을 남겨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해당 의료기관 원장은 물리치료사가 사전에 보고 없이 자의적으로 환자에게 부항 시술을 했기 때문에 경찰에선 무혐의 처리됐지만 도덕적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됐다.

하지만 물리치료사가 검찰로부터 기소 처분 또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물리치료사가 무혐의 처분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물리치료사가 무혐의 처분을 받을 경우 부항 시술이 한의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영역이 아니라는 법리가 새로 성립하게 된다.

이와 관련, 의사협회 은상용 정책이사는 “부항 시술은 일반인들도 가정에서 기구를 구입해 아무런 제재 없이 하고 있는 민간요법의 일종으로, 한의사의 고유영역이라는 근거가 없다”면서 “한의사협회가 이번 기회로 부항을 한의사의 전유물로 만들려는 것 같다. 한의사협회에서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맞대응할 것이다”고 밝혔다.

은 이사는 이어 “앞으로 한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등 불법의료행위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증거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증거가 확실한 경우 검찰이나 경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은 이사는 “GE헬스코리아 등 의료기기업체로부터 초음파 진단기기를 구입한 한의원 등에 대해 위법사항을 조사해 고발조치할 것이며, 전국의 한의원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의사협회는 “의원에서 부황 시술을 했다는 제보가 들어왔고, 확인 결과 명백하게 불법적인 부분이 있어 고발조치한 것”이라며 “부황은 건강보험법상 한방의료행위로 등록돼 있고, 수가도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한의사들이 부항을 한방 고유영역으로 간주해 한의사들만이 부항을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고려수지침학회(회장 유태우·동양의학박사)는 최근 의사협회가 ‘부황 시술 관련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와 회신공문을 통해 부항이 민간요법이라는 사실적 근거를 낱낱이 밝혔다.

전문가집단인 의사협회가 수지침학회에 자문을 구하기 위해 협조 요청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유태우 회장은 의사협회에 보낸 회신공문에서 “원래 한방이란 전래되어온 전통의학을 말하며, 한약과 침·뜸을 가리킨다”며 “전통의학이란 동양의학 고전에 기록된 내용에 한하며, 구체적으로 한약과 침·뜸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한의사와 부항은 일체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 회장은 “전통의학인 침·뜸 고전에는 부항이 전혀 없다. 부항과 전통의학의 관련성을 알아보기 위해 침구학의 전통 고전을 살필 필요가 있다”면서 “침·뜸의 최고 원전은 약 2000년 전경에 쓰여 졌다고 하는 황제내경이다. 이 책 내용에 있는 것만이 침·뜸의 기본이 된다. 내경에도 부항이란 말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그 이후에 쓰여진 황제침구 갑을경(서진(西晉) 때 황보밀이 저술)과 14경발휘, 송나라 때 침구자생경, 명나라 때 침구대성, 조선왕조 때 동의보감 침구편이 국내 침구계나 전 세계 침구학의 정통 기본이 되나 이들 문헌에도 부항이라는 용어나 방법이 없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김두종 박사가 지은 한국의학사는 주로 한의학 관련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으나 역시 부항이라는 용어가 없으며, 일본에서 발간된 침구학 사전에도 부항이란 용어가 없다”고 덧붙였다.

유 회장은 “청나라 말기에 저술된 동양대사전(1970년 6월 5일 출판, 고문서 발행)에도 부항이라는 말이나 부항을 의미하는 발관법(拔罐法) 내용이 없다”며 “다만 최근에 발간된 중국침구학에서 발관법이라 해 대나무, 유리통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인다”고 밝혔다.

중국침구학은 1990년경 중국에서 출판한 것을 음양맥진출판사에서 1996년 2월 출판한 책자에 비로소 발관법이라는 내용이 수록돼 있어서 침·뜸의 보조요법으로 쓰인다고 기록돼 있다는 것.

한국의 성보사(배병철)에서 한글번역한 동양의학대사전을 출판하면서 최근 용어를 보완해 부항⟶발관법이라고 소개돼 있으며, 번역 동양의학대사전은 2000년 3월 5일 출판·발행됐다고 한다.

유 회장은 이어 “순수한 한국적인 용어인 부항은 수백년 전부터 민간요법으로 옹기나 도자기로 부항단지를 만들어 널리 이용해 왔으며, 모든 국민이 부항이라는 말을 알아도 발관법이라는 용어는 모른다”면서 “1980년경에서야 유리단지로 부항을 만들었고, 1990년경부터는 플라스틱으로 부항을 만들어 민간 사이에 널리 이용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 회장은 “2000년경 들어와서 민간요법인 부항을 한의학의 범위가 아닌데도 한의학의 한 분야로 견강부회해 한의사들만이 쓰도록 하고 있다”며 “전통의학의 한약과 침·뜸에서 부항이란 용어나 방법은 없으므로 한의학의 방법이나 기구는 아니라고 사료된다”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결론적으로 “세계적으로 의사들은 모든 대체의학과 민간요법을 모두 이용하고 있다”면서 “부항은 민간요법으로서 경험자가 민간에서 널리 이용하거나 이러한 민간요법을 의료인이 사용하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따라 의사협회는 수지침학회의 사실적 근거자료를 비롯해 각종 자료들을 검찰에 제출해 무혐의 처분을 받아내는 한편, 한의사가 한방병원이나 한의원에서 초음파 진단기 등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문제를 한의사의 면허 범위 외의 의료행위로 간주, 불법의료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은 이사는 한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가정용으로도 판매되는 쑥뜸기에 약쑥을 넣고 타이머로 시간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쑥뜸 시술을 했더라도 법률상 의료행위로 보기 어려워 무면허라도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지난달 28일 대법원 판결을 예로 들면서 이번 물리치료사의 부항 시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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