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한지의사'도 생각해 보자

허정 교수의 보건학 60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전 보건대학원장)

이제는 의사로 통일이 됐지만, 구한말 현대의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는 의생과 한지의사(限地醫師), 그리고 의사가 있었다. 

한지의사는 오랫동안 의사 밑에서 조수 역할을 했던 사람에게 간단한 시험을 거쳐 지역 한정으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이다. 그것이 제도화되면서 해방 이후에도 일정 지역에서 의사처럼 진료를 볼 수가 있었다. 아직도 러시아에는 국제적 기준의 의사와 함께 시골에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우리나라의 한지의사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분쟁이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 수련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나고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와 교수들까지 정부의 양보를 요구하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사단체와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한다. 

그러나 의사들은 좀처럼 물러날 기미가 없다. 증원계획을 백지화하지 않는 한 대화에 응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런 어려운 시기를 돌파하기 위해 정부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아마 최후 수단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대책 중 첫째는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하는 경우다. 

아마 베트남과 필리핀 같은 곳에서는 계약에 따라 높은 보수만 보장한다면 한국에서 일하고 싶은 의사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진짜로 국내 의사들의 권익이 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선진국들은 대부분 의사들을 수입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를 위시해 필리핀 등의 의사들이 시험을 거쳐 일정한 자격을 얻게 되면 미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의과대학들이 애써서 의사를 양성해 놓으면 미국으로 가 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처럼 후진국의 고급기술 인력을 선진국이 높은 보수로 데려갔고 지금도 그런 경향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이런 일들을 극복하고 한국 사람들이 한국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은 과거에도 있었던 별로 낯설지 않은 한지의사 제도의 도입이다. 

요새 의과대학에 정원이 늘어난다고 하니까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다른 대학에서 공부하다 말고 의대입시를 준비한다고 한다. 좋지 않은 경향이다. 한지의사를 다시 우리나라에 도입한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시험에 의해 학비 면제로 의과대학에 진학시키고, 졸업 후 일정기간 수련의 과정을 거쳐 정부가 원하는 지역 의료기관에서 일하거나 개업하는 제도다. 아마 지역에 가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봐야 20년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이후에는 자유롭게 다른 의사들같이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된다. 

아직도 의료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 의사들로부터 제대로 된 의료를 받으려면 한지의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하게 되면 우리나라 이민정책하고도 맞물려 매우 복잡해질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고급기술인력을 빼 온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봐도 바람직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이제는 의사들이 양보할 때가 된 듯하다. 정부는 한지의사 제도를 적극 생각해보고, 의사들은 정부 증원계획에 협조하기 바란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의사들의 권익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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