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합진료 금지, 환자 치료선택권 침해… 의료인프라 붕괴는 덤"

정형외과의사회 "영세한 의료기관들 줄도산 뻔해, 대책없이 고사시키겠다는 것"
의료행위 허가제도·의료기관 표시법 등 제안… 가장 우선순위는 '수가현실화'부터

김완호 회장(왼쪽)과 김형규 수석부회장

정부가 혼합진료를 금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의료계에 이어 환자들까지 반발에 나서고 있다. 

의료계는 환자 치료선택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하는 한편, 시민단체는 정부가 제시한 금지 항목들이 제한적이라며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혼합진료'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혼합진료는 의사가 환자 진료에 있어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진료(급여)와 비급여 진료를 함께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의료계는 혼합진료 금지를 추진하게 되면 그동안 저수가 체계에서 힘들게 버텨왔던 1, 2차 의료기관들이 연쇄 도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 김완호 회장과 김형규 수석부회장을 만나 혼합진료와 관련된 입장을 들어봤다. 

정형외과의사회에 따르면 혼합진료가 금지될 시, 더 나은 치료를 받기위해 환자 스스로 개인적인 진료비를 부담하거나 추가적인 보험료를 내고서 실손보험을 통해 보장받고자 하는 비급여 진료가 제한된다.

비급여 진료가 현실적으로 급감하게 되면 환자의 불편 증가와 의료기관의 경영 악화로 이어져 1·2차 의료 인프라가 붕괴되는 것은 덤이다. 이는 결국 의료기관의 행정업무 과부하와 환자의 병·의원 이용에 제한이 생길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도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부 소수에 의해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과잉 비급여 처방이 마치 대다수 거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호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완호 회장은 "환자 치료에 필요하지만 마치 비급여치료는 잘못된 치료인 것처럼 정부는 몰아가고 있다"며 "또 의사 악마화 프레임 만들기에 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급여와 비급여가 공존하게 만들어놓고 이제와서 비급여를 제한하려는 정책인 무책임하고 잘못된 접근"이라고 판단했다. 

정형외과의사회는 현재 급여와 비급여로 나눠진 우리나라 진료체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급여 수가를 대폭 인상하고 비급여를 줄여나가는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현 건강보험재정상 불가능한 상황으로, 결국 급여 수가만으로는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없어 비급여로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행위별 수가제에서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비급여 혼합진료에 대해 정부는 재정상의 안정을 이유로 방관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며 "이에 따라 각 의료기관은 다양한 비급여 진료로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면서 경영의 안정화를 도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낮은 급여 수가 대신 비급여로 수입 보전을 하면서 유지해온 대다수의 '정상적인' 의료 기관들이 수익 악화로 인해 점점 폐업할 수도 있다"며 "갑자기 비급여 혼합진료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하면 재정적으로나 시설면에서 영세한 의원급 의료기관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게 되고, 영업을 할 수 없는 폐업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말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정부가 만든 땜빵식 정책 중 하나가 실손보험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실손보험사들은 모든 치료비를 보장해 준다면서 가입을 유도해 전 국민의 80% 가까이가 가입했다"며 "실손보험으로 인해 환자 및 일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생긴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는 일부 소수에 집중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익 내기 좋은 비급여 의료행위가 있으면 전공 분야와 관계없이 그쪽으로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필수과 지원이 줄어들고 있고, 비급여 전문의원의 개원을 컨설팅해주는 업체까지 난립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정부가 비급여 진료를 차단하기 위해 포괄수가제나 신포괄수가제를 도입할 때마다 정형외과를 포함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김 수석부회장은 "우리나라의 신포괄수가제도는 일본의 진단군 분류에 따른 일당포괄수가제도 DPC/PDPS를 벤치마킹해 개발한 제도"라며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행위별수가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수가 자체가 낮게 책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몇 배 높은 수가가 책정돼 있어 포괄수가제나 신포괄수가제를 통해 비급여를 차단하고 관리하는 정책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신포괄수가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급성기 병원으로 과거 3년 이상의 입원 환자 진료실적 △진료(처방)내역에 대한 입원 일자 별 자료제출 가능 △의무기록실이 설치 있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의한 질병분류코딩이 되어 코딩자료 제출 가능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운영 등 조건을 갖춰야 한다.

김완호 회장은 "정형외과는 수술을 하는 과로서 정부에서 진료정책을 바꾸려 할 때 항상 포괄수가제나 신포괄수가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이 제도를 이용하면서 비급여 진료를 차단하려고 하는 시도도 현재 있다"고 말했다. 

김형규 부회장도 "의원급 의료기관 중 이 같은 조건을 갖춘 곳은 전무하다"며 "이러한 의료기관들에 한해 진료비의 가산점을 부여하겠다는 것이 복지부가 시행하는 정책의 기본 틀이다. 15% 의원 가산을 지난해부터 없애고 정부가 요구하는 요건을 맞춰야만 정책 가산을 주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의료행위 허가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현재 전문의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의료법상 의사가 되면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돼 3차 의료기관 외에서는 전문분야 전공이 거의 유명 무실하다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최근의 예로 BMAC(자가골수 흡인 농축액 무릎 관절강내 주사)이 신의료기술로 인정돼 비급여로 처방이 가능해지자 전국 많은 의료기관과 심지어 한방병원, 안과병원에서까지 과도하게 시행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는 잘못된 실비 보험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고, 동시에 불완전한 전문의 제도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한 "당장 특정 의료 행위를 특정과에서만 하도록 변경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전문의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특정 의료행위에 대해 허가할 때 해당되는 특정과 전문의만 시행할 수 있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료기관 표시 방법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프라인에서는 간판법이 시행되고 있어 전문의는 해당과를 표시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는 진료과목으로 별도 표시를 하도록 돼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수석부회장은 "온라인 상에서는 이러한 규제가 전혀 없는 상태"라며 "큰 광고비를 쓰는 의료기관은 그 전공 분야에 관계없이 노출이 많이 되고, 환자들은 전문 분야에 대한 정확한 사전 정보 없이 의료기관을 선택하고 방문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빈틈을 이용해 일부 소수 의료기관에서 특정 비급여 치료가 있을 때, 광고로 환자를 유인, 그 분야 전문의의 진단과 처방에 의한 전문적인 치료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수익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무분별하게 처방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형외과의사회는 비급여를 제한하기 전에 먼저 현행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가 현실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조치를 한다 하더라도 수가의 현실화를 먼저 이루고 나서 논의 후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를 외면하고 다른 우회작업을 통해 효과를 얻으려고 하는 순간 일차의료는 붕괴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정부가 필수의료 패키지 논의 과정에서 비중증 비급여 혼합진료를 금지하겠다는 의도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대책도 없이 고사시키겠다는 말로 번역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혼합진료 금지에 더 나아가서 신포괄수가제로 가격을 묶으려 하거나 또한 궁극적으로 한 의료기관에 총액을 설정해 계약을 시도하려고 하는 퇴행적인 실수를 하면 안 된다"며 "이는 대한민국의 선진의료 시스템을 일거에 망가뜨리는 최악의 정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또 "현재의 혼합진료시스템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에 대한 해결없이는 그 어떤 대책도 현재 의료기관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올 것이 자명함을 정부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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