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장기이식 대기자가 될 수 있다

[데스크칼럼]

매년 9월 9일은 장기기증의 날이다. 9라는 숫자는 뇌사자 한 사람이 심장, 간장, 신장, 각막 등을 기증하면 아홉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기기증의 날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1997년부터 매년 9월 둘째 주를 장기주간으로 정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08년 장기기증의 날로 명칭이 바뀌면서 다양한 행사와 함께 전 사회적 기념일로 자리잡았다.

장기기증의 날이 제정된 지 4반세기가 흘렀다. 하지만 국내 장기기증 현황은 여전히 저조하다. 장기이식 대기자는 5만명에 육박하지만, 기증자 수는 그의 1/10에도 못 미친다.

지난 11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장기 등 기증희망등록자 및 이식대기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이식 대기자는 4만9765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4만3182명, 2021년 4만5843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기증자 수는 4490명에서 4284명으로 줄었다. 이식 대기자의 8.6%에 불과하다. 이식 대기자의 평균 대기시간은 3년을 훌쩍 넘었고, 매일 여섯 명이 이식을 기다리다 결국 사망한다.

법적으로 매매가 허용되지 않는 장기는 기증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다. 전 세계적으로 돼지 등을 이용한 이종이식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현재로선 가장 확실한 방법이 기증이다.

국내 장기기증자의 90%는 생존 시 기증자다. 뇌사 장기 기증률은 인구 100만명 당 7.88명(2022년)으로 미국 44.5명, 스페인 46.03명, 영국 21.08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수치에서 보듯 스페인과 미국의 뇌사 기증자 수는 우리나라의 5배가 넘는다. 미국은 전체 장기기증 중 80%가 뇌사자 기증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35%에 불과하다.

이처럼 국내 뇌사자 장기기증이 저조함에 따라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DCD)도 그중 하나다.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은 심정지로 사망이 확인된 후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장기기증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뇌는 죽었지만 심장은 뛰는 상태에서 장기를 기증하는 뇌사자 기증과 구별된다. 미국과 유럽은 오래 전부터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제도에 대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본격적으로 논의돼야 할 시점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제도는 이미 선진국에서 법제화돼 있는 제도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합리적이고 명백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회구성원의 공감과 동의도 필요하다.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이 새로운 생명을 위한 의미있는 죽음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전 국민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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