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덕(崔根德) 박사는 경상도 진주에서 서당에 다니며 한문공부를 했다. 사서삼경을 위시해서 오래된 고서도 섭렵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까지 후일 특강에 나서기도 했다.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가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은 인재들을 뽑게 되자 유학대학(儒學大學)에 들어와 공식교육과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선근 박사가 정신문화연구원을 만들때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북에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펴낸 것을 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최근덕 박사가 이 사전 편찬사업을 맡게 됐다. 그의 추천으로 당시 90이 넘은 김두종 박사와 나는 의약분과 위원, 또 홍문화 박사는 약학사 전문위원이 됐다. 이 사전 편찬사업이 마무리되자 후일 정신문화연구원장이 됐던 성균관대학교 류승국 교수의 추천으로 성균관대학 교수로 되돌아 왔다.
최근덕 박사는 학생 때 역사소설 대가 박종원 선생의 추천을 받아 여러 신문에 연재소설을 썼고 대학에 있을 때는 EBS 교양한문 강좌에 고정 출연해 고전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미 작고한 대구한의과대학 김유성 교수의 사저에서 이선근 박사의 간청에 따라 국난극복사(國難克服史)를 쓰고 삼별초에 대한 얘기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동양고전을 잘 알지 못했던 나는 세종문화회관에 있었던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에서 논어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남산기슭에 있는 김유성 교수 댁에서 최근덕 선생으로부터 소학을 배웠다. 후일 그는 나를 '소학박사(小學博士)'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국역연구원에서 논어와 맹자를 끝내고 대학과 중용도 배웠다. 그를 통해 인사동에 있는 고서전문상 통문관도 알게 됐고, 내각장판으로 된 고서들을 사기도 했다.
그는 참 열심히 살았다. 성균관 관장이 되자 향교교리(鄕校校吏)를 모아 회의를 하는데 나를 초청해서 강의도 시켰다. 그는 필자와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서로 왕래하며 그가 개인적으로 열고 있는 고전특강에도 나갔다. 그중 단군신화가 들어 있는 삼국유사가 지금도 기억난다.
한때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신동아에 최남백이라는 필명으로 연재소설 홍총각(洪總角)을 연재하기도 했다. 홍총각은 1980년 초부터 1986년 말까지 만 7년간 원고지 9천장 분량으로 많은 독자들의 갈채를 받았다. 홍경래 난을 반봉건 농민전쟁이란 시각에서 재조명한 이 소설을 반역이라는 제목의 7권의 책으로 엮어 책이 출판되자 나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는 한학자이면서도 필재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의 담백하고 솔직한 학자적인 양심을 높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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