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제갈량(諸葛亮)이 번번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머리 좋은 사마의(司馬懿)도 골탕을 먹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손자병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요순시대 왕도정치를 주장했던 사람들에게 이들은 한낱 재주꾼이나 잡기에 능한 사람들이다.
한문을 배울 때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사서를 우선 꼽는다. 모든 사람은 패도가 아닌 왕도를 지향해야 하며 수신제가부터 하라고 강조했다. 학문을 배우는 것은 자신의 수신제가와 관련된 위기지학(爲己之學)이 첫째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세계사의 입장에서 보면, 서세동점(西勢東漸)과 함께 서양문물이 들어와 여러 가지 도구와 기구를 써서 생활에 도움을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되면서 과거의 위기지학에서 남을 의식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점차 바뀌어 갔다. 과거 학문은 수신제가를 근본으로 했지만, 서양의 산업혁명과 문명의 발달이 위인지학을 부추기게 된 것이다.
물론 서양에서도 스콜라철학이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수양에 힘쓰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근대 서양문명은 넓게 봐서 위인지학이다. 원자탄이 생겨나고 원자로에 의해 원자력이 활용되는 오늘날에는 더욱 위인지학이 기세를 떨치고 있다.
중세이전의 농노제도를 벗어나서 기계와 도구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산업의 혜택을 많은 사람에게 주자는 얘기도 일리는 있다. 위인지학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근대 이후 벌어지고 있는 세태를 보면 위기지학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바뀌어 범죄와 전쟁이 판을 치게 됐다. 엄격한 법과 법치가 어느 나라에서나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정은 정야(政正也)라고 했다. 위정자가 제대로 정치를 하면 법으로 다스릴 단계까지 이를 필요가 없다. 법으로 강요하는 유위이화(有爲而化)보다는 덕으로 다스리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요순시대는 법으로 다스리기 이전에 백성들이 알아서 살아가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세상이었다. 너무 이상적인 얘기 같지만, 법 만능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법의 심판을 최우선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풍조가 늘어나고 있다. 법도 필요하다. 그러나 법 이전에 정치가 바로 선다면 이런 법치만능시대는 사라지리라 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유행처럼 나돌던 때도 있었다. 권력을 잡은 자가 공권력을 이용한 법의 이름으로 상대를 다스리는 것도 좋은 풍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법치만능사상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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