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유행이 한물 갔지만 30~4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전통의학에서 침구술이 차지하는 몫은 매우 컸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체질의학이나 사상침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였던 이명복 박사는 나이 들어 체질침을 터득했고, 한때 그의 연구실에는 침을 맞고자 하는 사람들이 매일 수십명씩 찾아왔다.
이런 와중에 이수호 박사는 침구학이란 책을 써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수호 박사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의 전신인 동양의약대학 전임강사로 있으면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얼마 전 안타깝게 고인이 되신 이수호 박사는 당시에는 권력의 정상에 있었던 김종필 씨의 안면신경통을 침으로 완치시키기도 했다.
김종필 씨가 그의 뉴욕행을 주선했다. 특출한 의료기술과 명성에 힘입어 그는 뉴욕에 한국의 침구술을 소개했으며, 그의 시술을 받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충청도 사람이다.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다시 한번 그를 존경하고 흠모한다는 뜻을 밝히고 싶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UNDP의 지원을 받아 뉴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치료를 받는 현장을 봤고, 후한 대접을 받은 기억도 난다.
내가 그의 집에 초청받아 갔을 때도 개인적으로 침을 맞으려는 미국인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그는 미국으로 이주할 때 한의서와 함께 동양고전도 많이 가져갔다고 한다. 내 기억에 남는 책으로는 논어와 공가사화가 있다.
그는 뉴욕 맨해튼과 가까운 플러싱에 살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서 주류 미국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대학에도 출강했다. 대인관계도 너그러워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고 인연을 잘 지켰다. 이제 생각하면 일장춘몽과 같다.
옛날 기억이 날 거라면서 중국음식점 대려도에 데려가 저녁을 먹던 기억도 생생하다. 우리나라에서 크게 성업했던 대려도는 당시 맨해튼에서 영업 중이었다. 이제 생각하면 다 지난 얘기다.
명석하고 훌륭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다니 애석하기 짝이 없다. 훌륭한 사람은 저승사자들이 빨리 데려간다는 옛말이 있다. 이제 유명을 달리한 그에게 생전의 괴로움은 없을 터다. 하지만 남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의료인인 동시에 한학자가 우리 곁을 떠나 참으로 애석하기만 하다.
좋은 인연으로 길이 남을 이수호 박사의 영전에 명복을 빈다. 산사람의 의무이자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내가 진심으로 이수호 박사를 좋아하고 기린다는 얘기를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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