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에서 예방의학을 공부했고 두 번에 걸쳐 미국에서도 보건학을 공부했지만 이전까지 인류생태학이란 말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고응린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자 보건통계학을 기르치러 온 분이 김정근 교수다.
김 교수는 미국 미네소타에서 보건학 석사를, 그리고 일본 동경대학에서 보건학 박사를 받았다. 그 후 보건통계학보다는 일본 동경대학에서 한참 붐을 일으켰던 인류생태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했다.
새롭게 생겨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은 하나에서 열까지 미국의 체계를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그가 보건통계학이 아닌 인류생태학 담당 교수가 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명석하고 높은 안목을 알아본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반대했지만 나는 그를 믿었고 열렬한 생태학 신봉자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그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분이다. 모든 것이 생태계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삼성문화재단에 나를 소개해 르네 듀보(Rene Dubos)의 '건강이라는 환상'을 번역하도록 추천하신 분도 김정근 교수다.
그의 은사였던 가츠누마(勝沼) 교수는 동경대학의 보건학과 교수로서 인류생태학 교수였다. 동덕대학교 이윤숙 교수도 동경대학 가츠누마 교수 밑에서 학위를 받았다. 가츠누마 교수도 높은 식견을 가진 학자였고 그를 따랐던 김정근 교수도 훌륭한 분이었다.
김 교수는 인류생태학 교수로서 많은 연구를 했으며 훌륭한 동료와 제자들을 길러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김윤신 교수도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고 그의 주변에는 많은 후학들과 제자가 있었다.
사람은 인간적으로 볼 때 장단점이 있다. 그중 장점을 살려서 세상을 살아나가면 된다. 그는 매우 명석하고 두뇌가 좋으며 학문에도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김정근 교수의 솔직하고 정직한 성품과 함께 높은 식견으로 인류생태학에 대해 얘기하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인류생태학이 우리나라에서 확실하게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나는 90을 넘겨 오래 살고 있지만, 김정근 교수같이 뛰어난 학자를 알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람이 특출나다 보니 시련도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보통사람이면 그런 시련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련을 이기고 꿋꿋하게 살아온 김정근 교수를 나는 각별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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