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의료환경에 뒤처진 '의료법' 개선만이 살길

[신년기획 / 보건산업 규제혁신 과제] 의료서비스

수가 등 실질적 법개정 필요… 갈등해결 위해 정부가 나서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의료패러다임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4차산업혁명에 따른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도입 등 보건의료환경은 급속한 변화가 시작됐으며, 이에 따른 갈등도 다양화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에 전공의 지원 기피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고, 전문의 확보 및 경영상의 어려움 등으로 의료기관의 정상적인 운영과 유지가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간호법 제정, 필수의료, 원격의료, 소아청소년과·흉부외과 등 폐과 위기, 의대증설,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실손보험 등 의료 문제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 또 의료계 내부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직역 간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객관적 근거를 기반으로 생산적인 논의를 통해 국민의 편익을 따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곧 정부가 갈등 해결을 위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이에 더불어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오는 땜질식 처방은 뒤로하고, 실질적이고 확실한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다. 수가 개선,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료진의 처우 개선, 의료전달체계의 개선 등이 필요하다.

필수·응급의료에 재정 투입 강화

지난 2018년 '문재인케어'가 출범했다. '문재인케어는 MRI와 초음파 검사에 부분적으로 건강보험을 적용, 환자의 검사비 부담은 크게 줄였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건강보험 재정 지출은 크게 늘었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실제 2018년 1891억원이던 MRI와 초음파 진료비는 2021년에 1조 8476억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같은 과잉진료가 원인으로 지목되자 정부가 건강보험 적용에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 본인부담을 다시 늘리기로 했다.

대신 필수의료와 필수 응급의료체계 강화에는 재정을 더 투입키로 했다. 이는 제때 수술받지 못해 숨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지 않도록, 진단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40개 권역 응급의료센터를 수술까지 받을 수 있도록 중증 응급의료센터로 바꾸고 숫자도 10개 더 늘린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의료계는 현실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보내고 있는 상황. 필수의료의 범위에는 응급의료.외상.암.심뇌혈관질환.중환자.중증감염병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 관한 의료서비스나 임산부.신생아.소아 질환 등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리적 문제 또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의료서비스가 해당한다.

이는 결국 의사들이 더는 필수의료분야를 기피하지 않고 사명감을 갖고 소신 있게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의 신속한 재정투입 및 확실한 제도개선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특히 필수의료 대책에 대한 국가적 관심 속에 생명과 직결된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를 배출하려면 수술 기피를 부르는 의료사고 형사처벌 관행과 수술실 CCTV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간호법 제정

간호법을 둘러싼 갈등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3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뒤 1년 넘게 보건의료 직역 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대한간호협회·대한한의사협회와 이를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간협은 "초고령 사회 진입과 만성질환 증가에 따른 간호인력 수요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변화하는 보건의료 환경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간호법을 기반으로 숙련된 간호인력을 양성해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의협 등 보건의료단체들은 "간호법은 간호사의 권리와 이익에만 국한돼 있어 모든 보건의료인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기존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을 통해 논의해야 한다"면서 "간호법이 국회를 최종 통과하면 대대적인 총궐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2월 22일 의협회관에서 (가칭)의료분쟁특례법 제정 토론회에서 안정적 진료환경을 위해 논의했다

의료분쟁특례법 제정

내과를 비롯한 필수의료 분야 진료과 의사들의 가장 큰 부담은 소신진료가 어렵다는 것이다. 선의의 의료행위를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도 크지만 담당의사의 정신적 고통도 크다. 특히 병원에 내원할 때부터 위중한 복합질환을 앓는 환자는 열심히 진료해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그 결과가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소신진료가 더욱 어렵게 된다. 이에 의료계는 정상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의료인의 형사처벌을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함께 의료분쟁조정법 제46조(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개정을 통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 보상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고, 기금을 조성해 보상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계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반대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는 윤석열 대통령 선거 공약 중 하나였지만 취임 7개월을 맞은 현재까지도 안갯속이다. 가장 큰 원인은 의료계의 반대다.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법안의 경우 보험계약 당사자가 아닌 요양기관에 법적 의무를 부과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 문제 등 심각한 국민 피해가 우려되는 '개악적 법안'이라는 게 의료계의 판단이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는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를 핵심으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상정되지 못했다. 의료계가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으며 동의하지 않는 한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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