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의료기기 대법 판결에 의료계 강력 분노 "총력 대응"

의협 이필수 회장 삭발로 항의… 대개협, 정맥통증학회 등 잇단 반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합법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의료계는 잇따라 성명을 내고 환자의 생명과 국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이 대법원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판결에 삭발로 항의까지 한 상황.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26일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규탄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파괴할 정치적 판단기준'이라며 강력하게 규탄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할 것을 천명했다.

지난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한의사 A씨에 대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의협에 따르면, 한의사인 A씨는 부인과 증상을 호소하던 여성 환자에게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2년여 기간 동안 약 열흘마다, 초음파 기기를 사용해 총 68회에 걸쳐 자궁을 촬영하는 방법으로 장기간 과잉한 진료행위를 했다. 하지만 환자의 자궁내막암 진단을 놓쳐 환자에게 피해를 입힌 것으로 알려졌다.

3개 단체는 "환자에게 치명적 위해를 입힌 심각한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불법을 저지른 한의사를 엄벌하기는 커녕 '한의사가 한방의료행위를 하면서 그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정확한 진단명과 진단시기의 중요성을 폄훼해 국민건강을 방임하는 무책임한 판결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부적절한 진단수단의 사용'이 어떻게 환자에게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인지 재판부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3개 단체는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함과 동시에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일반 3개 단체는 공중위생과 밀접하고 중대한 관계가 있다"며 "의료법은 의료인 면허제도를 통해 의료행위를 엄격한 조건하에 의료인에게만 허용하고 무면허자가 이를 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의료인도 각 면허 범위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며 이런 취지로 의료법 제2조 역시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적시해 한의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또 "초음파 진단기기를 통한 진단은 영상 현출과 일체화돼 있어 검사자의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라며 "따라서 의사의 지도하에 방사선사와 임상병리사가 수행하며 규정된 정도관리를 통해 엄격하게 통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결국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로 되돌아올 것임이 분명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3개 단체는 대법원 판결로 발생할 수 있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즉시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의료법령 개정에 나설 것을 국회와 보건복지부에 강력하게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법원 판결을 빌미삼아 한의사들이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등 면허의 범위를 넘어서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속적으로 시도한다면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줄 수 있는 불법의료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해나갈 것"이라며 향후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신중한 검토와 판단을 촉구했다.

한편, 이 같은 대법원의 허용 판결에 의료계의 비난 성명도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초음파 진단기기는 비교적 안전하고 사용이 용이하지만, 오진하게 되면 환자를 위험에 처하게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우려했다. 

대개협은 "대법원의 이번 황당한 판결로 인해 그 피해는 결국 오롯이 국민들의 몫이 될 것이 뻔하다"며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인기영합주의와 실험주의에 빠진 판단은 결코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초음파 진단기기를 활용한 진단과 판독은 실시간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검사자의 전문성과 숙련도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의사가 아닌 자가 이를 상용한다는 환자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게 대개협의 우려다.

이에 따라 대개협은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쥐여준 이번 판결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문제이기에 서울중앙지법은 부디 현명한 판단으로 상급심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요청했다.

대한정맥통증학회도 "A씨는 환자에게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것처럼 시늉만 하다가 끝내 환자의 암 진단을 놓치고 진단과 치료를 지연시켰다"며 "그런데도 한의사에게 무죄 판결을 내림으로써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면죄부를 부여한 대법원의 판결은 사기꾼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다름 없는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국민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린 대단히 부당하고 위험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사법부 최고법원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며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는 책임은 대법원에 있고, 대법원은 반드시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 역시 이번 판결이 '진보'가 아닌 과거로의 '퇴행'으로 법이 우리나라 의료를 격하시켰다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대법원은 아픈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방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예는 너무 많다"며 "한방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 결과를 이용해 본말을 전도해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로 범죄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이어 "끊임없이 고민하는 환자들의 불안감을 사회적 통념이라는 논리를 적용해 전통의학과 한방을 하나의 틀로 묶어 동일시해버린 법원의 결정은 우리나라 의료를 지옥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운 것"이라며 "이번 판결로 앞으로 발생할 부작용과 오진으로 인한 의료사고는 판례를 만든 법원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도 의학과 한의학이 공존하는 '이원적 의료체계'에서는 각각의 전문 영역을 인정하되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는 엄격히 다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의사회는 "의사와 한의사는 각자의 영역에서 체계적인 교육과 수련을 받고 국가로부터 해당 의료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검증받아야 비로소 의료인으로서 정당한 의료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며 "전문영역을 이탈한 의료행위는 의료체계의 혼란과 국민 건강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의료행위의 개발 및 적용 원리가 한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했는지, 해당 의료행위에 한의학의 전문성이 내재되어 있는지 논리적으로 따져본 이후 법리적 판단을 해야 한다"며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법의 가장 큰 목적을 망각한 사법부의 민낯"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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