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 과거와 오늘날의 전염병

허정 교수의 보건학 60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전 보건대학원장)

잘한 일은 본받고 나쁜 일은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를 배운다고 한다. 궁형까지 받았던 사마천은 사기를 써서 과거의 폭군과 그들의 잘못을 꼬집었고 어진 위정자를 흠모했다. 

전염병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도 비슷하다. 과거의 무서운 전염병을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고 사전에 막는다는 의미도 있다. 과거와 오늘날의 전염병은 비슷한 것도 있지만 다른 것이 더 많다. 생활이 어렵고 기근이 잦았던 과거에는 전염병은 기아와 역병이라는 기역(饑疫)의 형태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의료사를 집대성한 김두종 박사나 일본인 미끼 사까에(三木榮)도 지적한 바와 같이 민중의 역사를 다룰 때 전염병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에서도 전사한 사람보다 굶주림이나 전염병에 걸려 죽은 사람이 훨씬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끔찍하고 괴로운 역사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먹는 고추도 임진왜란 때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해치기 위해 가져온 왜개자(倭芥子)였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인 사건보다 민중을 괴롭혔던 것으로 기아와 전염병이 첫째로 꼽힌다. 

5백년 조선 왕조실록에 따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사회적 사건은 기근과 전염병의 주기적 발생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민중사는 기역의 역사로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산골에는 가난한 화전민들이 많았다. 그들의 생활수준은 참 낮았다. 서울에도 하층민들이 모여 사는 토막촌이 있었다. 김두한 씨가 활동했던 수표교부터 왕십리까지 이어지는 청계천 주변은 토막을 짓고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하층민들에게는 더러운 음식을 통해 발생하는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흔했다. 일제 말기까지 천연두는 근절되지 못했다. 홍역은 일생에 한 번은 반드시 걸리는 것이라고들 얘기했다. 

5.16 혁명 이후 새마을운동이 벌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새마을 노래를 지었다. 서두에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고 하던 시절이었다. 절대빈곤으로 힘들었던 그 때에도 오늘날 후진국들이 겪고 있는 전염병들이 돌았다. 

한센씨병은 문둥병이라 해서 걸인들의 상당수를 차지했고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A형간염 등이 흔했다. 결핵도 많았다. 지금도 완전히 퇴치되지는 않았지만 결핵 환자는 많이 줄었다. 이제는 더러운 환경에서 불결한 음식이나 접촉에 의해 발생하는 후진국형 전염병에서 벗어나 공기를 통해 사람에게 옮겨지는 호흡기전염병이 늘어나고 있다. 참 많은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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