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 정신질환과 선진국

허정 교수의 보건학 60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전 보건대학원장)

젊었을 때 두 번에 걸쳐 미국에서 공부했다. 1959년 미네소타주립대학교 보건학 석사과정을 마쳤고 1965년부터 1967년까지 하버드대학교에서 보건행정학을 공부했다. 영어와 미국 문화를 익히기 위해 주로 현지 사람들과 생활했다.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중국음식점에서 한식과 중국요리를 먹기도 했다. 

두 번째로 미국에 가기 전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예방의학 실습을 담당했기 때문에 서울의대 졸업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을 나오면 70~80%가 미국에 가서 인턴과 레지던트로 취업했고 그 후 미국 병원에서 좋은 대우를 받기도 했다. 

의사가 모자랐던 미국은 한국 의과대학생들을 모집해 가던 때였다. 그러나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취업을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 차별이 있었다. 

가장 많이 선택하는 전문 과목은 환자와 직접 대면이 없는 마취과였고, 다음으로는 백인 의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신과였다. 유명 대학병원 정신과에는 외국인 의사를 별로 뽑지 않았기 때문에 백인 의사들이 오지 않는 정신병원에 주로 취업했다. 당시 미국에는 정신병이 많았다. 

국내에서 정신과는 그리 인기 있는 진료과목이 아니었다. 지금은 정신과와 신경과로 분리됐지만 그때 우리나라는 정신신경과가 하나의 진료과목이었다. 청량리정신병원같이 유명한 병원도있었지만 지방에는 정신병원이 거의 없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한국에 돌아와 노년학회 주관 학술회의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외국에서도 노인보건에 관련된 여러 나라의 학술회의에 초대받아 참석했다. 
당시 국내에서 노인정신병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선진국에서는 노인보건의 주요 과제로 알츠하이머병과 치매, 파킨슨병 같은 우리나라에선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병들이 부각되고 있었다. 
미국에서 노인보건 강의를 들을 때 담당교수가 나에게 '너희 나라에도 치매나 정신질환자가 있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많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급성전염병이 보건문제의 주요 과제였고 결핵이 최대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앞으로 우리나라 국민보건의 주요 주제는 선진국이 이미 50~70년 전부터 고민했던 정신질환과 치매가 될 것이다. 코로나인플루엔자 같은 유행병도 중요하지만, 치매나 파킨슨병 등 정신질환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시대가 됐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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