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서울대학교 안에서도 동경제대나 경성제대, 그리고 경의전 출신자로 나뉘어 쓸데없는 파벌이 존재했다. 지금은 국립서울대학교가 생겨나 이런 파벌이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이처럼 출신에 따른 힘겨루기가 흔했다.
경성제대나 경의전을 나온 사람들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는 거리가 있었다. 경성제대나 경의전을 나온 사람들은 독일 의학을 받아들인 일본의학을 습득했지만,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해온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는 미국식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인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졸업생들은 미국 유학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았다. 자연히 해방 이후 미군정이 시작되자 보건사회부 장관과 관료는 대부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출신으로 채워졌다. 당시 공중보건학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데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출신들의 공이 많았다.
그중 한 분이 윤석우 박사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나와 일찍이 해외에 나가 공중보건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보사부에서 고위관료로 근무했다. 윤석우 박사는 스케일이 컸고 학벌의 벽을 넘어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도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다니며 국제보건활동에도 매진한 바 있다.
윤석우 박사의 사위는 영국사람으로 내가 세계보건기구와 관련해 영국에 갔을 때 후하게 대접받은 추억이 있다. 또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윤석우 박사의 주선으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전국보건소장 재교육을 영국의 제약회사가 지원하도록 주선한 적도 있다. 도량이 넓었던 윤석우 박사가 대국적인 의미에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을 지원하셨던 기억이 새롭다.
윤석우 박사와 함께 윤석춘 국장도 잊을 수가 없다. 윤석춘 국장은 대학을 나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를 받았다. 당시 노동청에서 재직하는 동안 계장, 과장, 그리고 국장을 거치면서 산업보건 분야의 선구자 역할을 하신 분이다. 산업보건분야 초창기부터 현장에서 뛰면서 여러모로 참 많은 공헌을 했다.
산업보건분야는 많은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은 산업의학 전문의 제도도 생겨났지만, 돌이켜 생각해볼 때 윤석춘 국장이야말로 우리나라 산업보건의 실천적인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산업보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분으로 카톨릭 의대 의무원장을 역임한 조규상 교수도 빼놓을 수 없지만, 실무 면에서 산업보건 현장에서 발로 뛴 윤석춘 국장이 기억에 남는다.
정년퇴직한 후에도 산업안전공단을 만들었고 그곳에서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하셨다. 참 훌륭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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