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 천형(天刑)의 병

허정 교수의 보건학 60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전 보건대학원장)

케이블 TV에서는 오래된 고전영화가 자주 나온다. 얼마 전에는 기독교 색채가 진하지만 권선징악의 결론으로 이어지는 ‘벤허’가 방영됐다.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아 감옥으로 끌려갔고 더럽고 불결한 그곳에서 문둥병에 걸려 숨어 살다 예수의 은혜로 깨끗이 낫게 된다.
지난 질병사를 보면 지금은 실체도 알 수 없는 역병들도 있었고 수천년 동안 계속된 전염병도 많았다. 문둥병, 나병으로 알려진 한센씨병은 한번 걸리면 낫기도 어렵고 보기에도 흉했다. 그래서 하늘의 벌을 받아 생긴 병이라고 해서 ‘천형의 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경치가 좋고 풍경이 아름다운 소록도는 지금은 유명 관광지가 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병 환자들을 강제 수용했던 곳이다. 아직도 소록도에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유적들과 격리시설이 국립소록도병원이라는 이름 아래 보존되고 있다.

한센씨병 협회 본부가 있는 서울근교 꽃동네도 초기에는 나병 환자 정착촌이었다. 이곳에는 아직도 카톨릭 교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이 있다.
일본에서도 10여년 전까지는 나병 환자를 정착촌에 격리했고 불임시술을 통해 아이도 못 가지게 했다. 지금은 정부가 과거의 그릇된 정책에 대한 반성으로 그들에게 보상금도 주고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센씨병은 매우 전염력이 낮은 질병으로 격리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미 전문가들에 의해 밝혀졌다. 그러나 30~40년 전만 해도 나병에 걸리면 가족에게 버림받고 거지로 전락해 길거리를 배회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병 시인’으로 유명했던 한하운 시인도 가족에게 버림받고 소록도로 갔다. 그는 그의 시에서 소록도로 향하는 길에서 자고 일어나면 발가락이 하나씩 빠졌다고 썼고, 그 이야기는 산문으로도 발표됐다. 머리가 명석하고 대학까지 다녔던 한하운 시인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프다.

전염병의 역사를 훑어보면 그릇된 편견과 오해가 많았다. 나병은 더운 지방에서 잘 발생한다고 해서 열대병으로 분류돼 영국과 일본에서 그 관리방법을 찾기도 했으며, 죽을 때까지 격리 수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책이라고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학적인 근거는 거의 없다. 불결한 환경에서 밀집 생활하면서 나병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밝혀진 바와 같이 전염력도 매우 약하다. 전염병에 관련된 편견이나 오해가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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