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당국이 추진 중인 혼합간장 비율을 표시하는 정책에 대해 소비자단체와 식품학회가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식품과학회와 한국산업식품공학회,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소비자권익포럼은 지난 5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정보표시면에 표시해 온 혼합간장의 혼합비율을 주표시면에 표시하도록 한 식약처의 행정예고에 대해 “과학적 근거와 원칙에 바탕을 둔 식품표시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며 “혼합간장 비율의 전면표시 제도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약처는 지난 5월 8일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 알권리 충족을 위해 혼합간장에 산분해간장 등의 함량을 잘 보이게 표시하도록 하는 ‘식품등의 표시기준’ 일부개정고시안을 행정예고한 바 있다. 현재 혼합간장은 ‘정보표시면’에 혼합된 간장의 비율과 총질소 함량을 표시하고 있는데, 산분해간장의 비율과 총질소 함량을 ‘주표시면’에 표시하도록 해 정보제공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소비자권익포럼을 비롯한 5개 단체는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산분해공법을 이용했다고 해서 간장이라는 명칭을 못 쓰게 하거나, 혼합비율을 주표시면에 표시해 강조하거나 경고하는 것은 식품안전규제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혼합비율을 주표시면에 표시하면 오히려 소비자 알 권리가 아니라 불안감만 더 조성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산을 이용해 단백질을 분해하는 ‘산분해공법’은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기술로 ‘마요네즈, 분말수프, 물엿, 시럽, 스포츠이온음료, 의약품제조, 한약제조’ 등에도 활용된다. 간장에서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가수분해를 목적으로 산분해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혼합비율에 대한 기준점 마련해야
이번 표시제도 개선에 대해 식품전문가들은 “혼합간장의 ‘혼합비율에 대한 기준점’이 마련돼 있지 않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식품학회와 소비자단체에 따르면, 소비자의 알 권리를 분명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고시 개정 이유인 ‘공통기준 중 일부 모호한 규정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그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지난 해 9월 5일 식약처에 ‘혼합간장의 산분해간장 혼합비율 기준점 마련 및 산분해간장(화학간장)의 명칭 변경 의견서’를 전달했다.
의견서는 혼합간장의 산분해간장(화학간장) 혼합비율 기준점을 명확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양조간장 50%에 산분해간장 50%를 혼합하든지 양조간장 5%에 산분해간장 95%를 혼합하든지 비슷한 가격에 혼합간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제품 기준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행 법규상 1%라도 양조간장을 넣으면 혼합간장으로 분류하고 있어 자칫 소비자 기만이라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최소한 양조간장의 혼합 비율을 (소비자나 식품전문가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적정 수준까지 높이고 이에 맞춰 명확한 기준을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내용이다.
또 혼합간장은 ‘기타간장’으로, 산분해간장은 ‘아미노산액’으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기에 ‘아미노산간장’ 또는 ‘산분해간장’이라고 했던 것을 산분해간장의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약간의 양조간장과 혼합해 ‘혼합간장’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바꿔 불렀다.
일본이나 대만은 현재 발효되지 않은 간장에 대해 간장으로 분류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명칭 또한 ‘아미노산액’으로 규정하고 있다. 혼합간장을 ‘기타간장’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산분해 간장은 ‘아미노산액’으로 표기해 소비자들의 알권리와 선택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3-MCPD 기준규격 2002년부터 설정·관리
산분해공법과 관련해 이슈로 제기되는 것은 3-MCPD(발암물질)이다. 3-MCPD는 대두를 산으로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해물질이다.
원래 장류는 미생물 발효로 콩의 단백질을 분해해서 만든 발효식품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한식간장은 1년 이상, 양조간장은 6개월이 걸린다. 반면 혼합간장에 양조간장과 혼합되는 산분해간장은 탈지대두(단백질원료)를 염산으로 분해해 제조하는 일종의 인스턴트 화학간장이다. 장류 고유의 특징인 미생물을 통한 발효·숙성을 거치지 않고 염산을 사용하기 때문에 제조 기간이 약 2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로 인해 산분해간장은 3-MCPD(발암물질) 등 유해물질이 함유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지난 1996년에 산분해간장에서 3-MCPD가 검출된 사건을 발단으로 저감화 방안을 추진했으며, 2002년부터 산분해간장과 혼합간장은 0.3㎎/㎏으로 기준규격을 관리해왔다. 올해 4월 식약처가 발표한 ‘식품의 3-MCPD 기준·규격 재평가 보고서’에 의하면 3-MCPD 노출 정도는 현재의 관리기준으로 안전에 우려할 문제가 없는 상태다. 다만 식약처는 자주 섭취해 노출량을 줄여갈 필요성이 있어 산분해간장과 혼합간장에 대해 3-MCPD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다.
식품학회와 소비자단체는 “규제나 표시를 많이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형평성과 합리성,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체계를 갖춰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식품안전 시스템 구축을 위해 오랫동안 활동해 온 소비자단체나 관련 전문가들과도 충분한 정책 협의를 해주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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