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이영택 선생님을 기린다

허정 교수의 보건학 60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전 보건대학원장)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의사학 교실이 생겨나고 의과대학 본과 1학년 학생에게 의사학을 처음으로 강의하신 분은 김두종 박사다. 그 후 1960년대에 숙명여자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셨던 김 박사의 뒤를 이어 의사학 강의를 맡으신 분은 이미 돌아가신 이영택 교수님이다. 나도 교수님의 요청에 따라 몇 해 동안 의사학 강의를 맡은 일이 있다. 김 박사는 경상남도 함안 분이고 이 선생님은 마산 분이다. 원래 이 선생님은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계셨던 윤일선 총장 밑에서 병리학을 공부하셨다. 김 박사는 한학에 출중하셔서 오늘날 한의사들도 원 강의에서 쓰이고 있는 한국의학사의 저자이고, 이 선생님은 당시에는 드물게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셔서 불어를 아주 잘 하셨던 학자다.

이 선생님은 참으로 자상하고 성실하신 분이셨다. 정년퇴임 때까지 우리나라 의료계 전문지인 의사신보 창간으로부터 후생일보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수집했다가 나에게 물려주시기도 했다. 이 선생님의 부인(김성복 사모님)은 아직도 생존해 계시는데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신 예술가다.

이 선생님이 사용했던 연구실은 겨울에 난방이 잘되지 않았다. 찾아뵐 때마다 학교 근처 대학다방이나 학림다방에서 여러 가지 옛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당시 정부 관료였던 이한빈 선생이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원장이 되기 위해서는 학위가 필요했는데, 그 학위 취득을 위한 어학시험에 이 선생님이 불어 문제를 출제하셨다는 얘기도 들었고, 이제는 유명을 달리하신 고창순 선생 얘기도 들었다. 또 김영삼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고창순 선생이 주치의가 될 거라고 예언하셨는데 그대로 맞았다.

이영택 선생님은 참 담백하시고 야심 없는 훌륭한 교수였다. 정년 후 아들이 있는 미국에 가서 틈날 때마다 쇼핑몰에 가서 소일하고 싶다고 늘 말씀하셨고, 실제로 그렇게 하셨다. 한때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 관장을 역임하시면서 도서관 업무에 매진하신 적도 있다.

이 선생님의 사위인 정하원 선생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와 이비인후과를 전공해 서울에서 개업하고 있다. 이 선생님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신 분이지만 서울대학교에서 일생 의사학을 가르치면서 지내셨다. 되돌아보건대 선생님같이 야심이 없고, 깨끗하고 정직하게 교직에 충실하신 사람은 드물었다고 기억된다. 선생님을 기리며, 사모님이 만수무강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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