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회 폐지… 대국민 사과 끝내 안 해

의협 임총 개최… 일부 대의원 “장 회장만 잘못했나” 대의원 총사퇴 요구

  
정치권 금품 로비 의혹사태로 절망에 빠져있는 대한의사협회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5일 의협 3층 동아홀에서 임시 대의원총회를 개최했으나 의사들의 자존심 때문인지 국민들에게 사과문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등 오히려 내부 분열만 되풀이되는 양상이다.

의협 대의원회는 이날 대의원 242명중 175명이 참석한 가운데 당초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일부 대의원들의 강한 반발로 ‘없었던 일’로 돼 버렸다.

그러나 그동안 정치권 금품 로비의 전위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의사협회 산하조직인 ‘한국의정회’는 37년 만에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또 지난달 30일부터 회장 직무대행 체제에 들어간 김성덕 회장대행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추인했다.

앞서 유희탁 의장은 개회사에서 “이번 사태로 오늘 긴급하게 임시총회를 소집하게 된 것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라면서 “작금의 혼란을 조속히 수습하고, 추락한 의협을 재건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유 의장은 “모든 의협 회원은 잘못된 일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책임이라는 내 탓으로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협이 이 시련을 반드시 극복해 지금까지와는 달리 새로운 의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대의원들이 주인의식을 갖자”고 강조했다.
  
[안건 1] 회장 직무대행 추인의 건

김성덕 회장대행은 추인 후 첫 인사말을 통해 “먼저 금품 로비 파문으로 커다란 실망과 충격을 안겨드린데 대해 국민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인사했다.

이어 “지금 의료계는 거의 패닉 상태이며, 갈라질 대로 갈라진 의료계를 어디서부터 추슬러야 할지, 꼬일 대로 꼬여버린 대정부, 대국회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해 나가야할지 정말 막막하기 그지없다”고 운을 뗐다.

김 회장대행은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이 상황에서 절망에 빠진 채 그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으며, 다시 신발 끈을 묶고 마음을 다잡아 새로운 출발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강조하고 “그렇게 해서 무너진 우리의 신뢰와 자존심, 명예를 복원해 초라해진 우리의 위상을 다시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회장대행은 특히 의정회 문제와 관련해 “의정회 회장의 유고에 따라 의정회에 업무정지 조치를 취한 상태”라며 “앞으로 의정회는 국민을 위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공익단체 형태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안건 2] 예·결산 심의의 건

예·결산 심의에서는 사업계획 및 예산결산 심의위원인 양재수 대의원이 올린 2007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 동의안만 가까스로 통과됐다. 표결을 붙인 결과 이 동의안에 한해 150명이 찬성했다.

양 대의원의 동의안은 8가지 조건을 내걸고 2007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을 인준한 것이다.

당초 양 대의원은 ▲2006년도 결산에 관한 결의사항 ▲2007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 ▲의료 및 건강보험 관계법령 긴급대비회계 설치 ▲의료제도 및 환경 개선 특별위원회에 관한 결의 등 4가지의 동의안을 제출했었다.

앞서 김성덕 회장대행은 “대폭 축소해서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면서 “현 집행부 안은 장동익 집행부 때 만든 안이지만, 어떻게 해주든 집행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장동익 집행부가 편성한 2007년도 예산안은 지난해 116억2651만원 보다 3.97%(4억6265만원) 증가한 120억8919만원으로 나타났다.
  
[안건 3] 한국의정회 존폐 여부의 건

한국의정회가 37년 만에 결국 폐지되고 말았다. 대의원 175명중 120명이 폐지에 찬성했다.

의정회는 1970년 설립된 ‘대한의정회’의 전신이다. 99년 의약분업을 거치면서 좀 더 명확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로 2001년 한국의정회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정비했다.

의정회는 이번 사태로 정치권 로비의 중심에 선 단체로 재확인 됐으며, 주로 의협의 이익과 결부된 의료정책 관련 로비를 도맡아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건 4] 중앙윤리위원회의 건

내부고발자 문제를 놓고 여기저기서 “책임지고 사퇴하라”, “거짓말이다” 등의 고함이 터져나왔다.

김동준 윤리위원장이 “내부고발자에 대해 징계 및 처벌 등을 논의한 바 없다”고 보고하자, 일부 대의원들은 “언론에서 확인했다”며 “조사심리원회까지 언급됐는데 무슨 소리냐”며 맞받아쳤다.

그러나 배순희 윤리위원이 “신문에 나온 것은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거들자 흐지부지 넘어갔다.
[안건 5] 의료법 비상대책위원회의 건

의료법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장동익 전 회장의 공석으로 비대위가 어떻게 나가야 하고, 어떻게 새로 꾸러져야 하는지 앞이 깜깜하다.

A대의원은 “의료법 개정안이 아직 국회로 가지 않았고, 우리가 열심히 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며 “새 비대위 위원장을 선출해 개악 저지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B대의원은 “아직 전국 16개 시도에 비대위가 살아있고, 4개 보건의료단체 11명으로 구성된 실무협의회가 구성돼 있다”고 말했으나, C대의원은 “엉터리 비대위 해체하라”고 소리쳤다.

이어 유희탁 의장이 “비대위 위원장 선출 등을 집행부에 위임토록 하는 게 좋겠다”고 하자 김성덕 회장대행이 “제 혼자 하지는 않겠다. 대의원과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으며, 이를 받아들인 유 의장이 “집행부와 대의원 의장단이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자”고 의결했다.
  
[안건 6] 대국민 사과의 건

이날 유희탁 의장이 미리 준비된 대국민 사과문을 표결로 붙이려 했으나 대의원들이 일부 내용에 문제가 있다며 자구 수정을 요구하는 등 제동이 걸리면서 결국 사과문이 채택되지 못했다.

A대의원은 “저희들은 이 사건의 책임을 일부 지도층은 물론이고, 의사 전체가 함께 짊어져 할 공동의 책임이라고 느끼며 뼈를 깎는 자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돼 있는 문장에서 “‘일부 지도층’이 누구를 지칭하느냐”며 의장에게 따졌다. 그러나 의장은 설명하지 못했다.

또 B대의원은 “더 이상의 불법과 더 이상 실망을 주지 않도록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바꾸어 놓겠습니다”라고 돼 있는 문장에 대해 ‘더 이상의 불법’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으며, C대의원은 마지막에 적힌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대의원 일동’을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단 일동’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특히 D대의원은 “지금 하지 말고 좀 상황을 좀 지켜보다가 하자”고 제안했고, F대의원은 아예 “사과문을 내면 안 된다”고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이에 따라 대국민 사과문은 끝내 발표되지 못했고, 자구 수정과 시기 조정에 대해 의장단에 위임하기로 의결했다.

[안건 7] 장동익 회장 사퇴의 건

장동익 전 회장의 사퇴문제를 둘러싸고 설전이 오갔다. A대의원은 “장 회장이 (지난달 29일) 사퇴했기 때문에 여기서 논의할 필요가 있느냐”며 의사진행발언을 하자, B대의원은 “선언적 의미로써 우리 대의원총회가 사퇴시켜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또 C대의원은 “상정 안건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윤리위원회에서 제명시키는 게 맞다”고 말했고, D대의원은 “황우석이 만큼 나쁜X이다. 부끄럽다”고 몰아 붙였다.

그러나 E대의원은 “장 회장이 잘할 때도 많았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하면서 “막상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자기네들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장 회장만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F대의원도 “대의원들도 사퇴하라”며 “의장단과 감사도 2개월까지만 하고, 사퇴하라”고 요구했고, G대의원도 “대의원 총사퇴가 국민들에게 진정한 사과”라며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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