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싸고 의료계-시민단체 ‘신경전’

의료계 "재벌·실손보험사만 배불려"…소비자단체 "국민 편익 증대"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 심사를 앞두면서 의료계와 보험업계, 시민단체까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보험업계와 의료계는 지난 10년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과 전재수 의원은 각각 ‘보험업법개정안’ 등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를 위한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오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심의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전산망을 활용해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자동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금융위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2018년 12월 기준)는 3422만명에 달한다. 개정안은 보험회사에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 구축‧운영을 요구하고, 의료기관에는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요청할 때 진료비 증명서류를 전자문서 형태로 전송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서류를 보낼 때 심사평가원 또는 전문중계기관을 경유하도록 하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의 핵심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자적으로 '의료기관→ 중개기관→ 보험사'로 전송하는 것이다. 가입자가 보험금 청구를 위해 서류를 떼 보험사로 보내는 불편을 없애는 것이다. 지금은 가입자가 진료를 받은 후 전화, 인터넷 등으로 보험사에 연락해 필요한 서류를 통지받아야 한다. 또 각종 서류를 의료기관으로부터 발급받은 후 팩스, 우편, 이메일, 스마트폰 등을 통해 보험사에 제출해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전 의료계가 나서 반대 성명서를 내고 있다. 가장 먼저 대한의사협회가 개정안 저지에 '총력전'을 선언했고, 뒤이어 대한병원협회와 각 시도의사회, 각종 학회 등 의료계 각계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혀왔다. 보험업계가 실손보험으로 인한 심각한 적자를 호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청구간소화를 추진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해 왔다.

의료계는 "청구간소화는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를 간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가 가입자의 질병 관련 정보를 쉽게 획득하기 위함"이라며 “이렇게 얻어진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보험사는 보험금 청구를 거부하거나, 보험 가입이나 연장 거부의 근거를 쌓게 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의협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의 실손보험으로 인한 손실액은 올해 상반기 1조3000억원에 이르며, 이것은 전년도보다 41%나 증가한 실정이다. 손해율 역시 121%에서 129%까지 악화됐으며, 올해 말에는 손실액이 무려 2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게 실손보험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보험업계가 오히려 가입자들이 더 쉽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청구 간소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고용진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금 지급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환자의 건강과 질병에 관련된 민감한 개인정보를, 의료기관으로부터 아무런 제약 없이 받아볼 수 있게 하는 유례없는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즉, 보험사는 개인의 질병자료를 축적해 액수가 큰 청구 건에 대해 지급을 거절하는 근거로 사용하거나 보험금 청구가 많은 환자의 보험 갱신을 거부하고 보험료를 할증하려 의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지역의사회 역시 "번아웃 상태 의사가 보험회사까지 챙겨야 하나"라며 "해당 법안은 민간 실손보험회사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인 의료정보를 무더기로 유출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만일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의료기관은 환자 진료의 세부 내역까지 실손보험회사에 보내야 하는데, 환자의 건강에 관한 은밀하고 소중한 정보가 민간보험회사의 손아귀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보험회사가 환자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해 추후 해당 환자에게 보험 상품을 판매할 때 항목을 골라서 가입시키는 등 역선택을 하게 될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각 학회들도 실손보험 청구대행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보험업법 개정안은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통해 국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문재인 케어 정책의 기본에 반대되는 법안"이라며 "해당 법안은 보험업계의 숙원 법안으로써 국회의원, 정치인들이 진정 국민들을 위한 정책인가를 심사숙고해 결정하지 않고, 의료행위에 대해 의료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보험 업계만을 위한 파렴치한 법안"이라고 밝혔다.

학회는 "보험업법개정안에는 의료기관에게 진료내역이 포함된 보험금, 청구 전송 관련 자료 제출을 강제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민간이 분석관리 한다는 것은 정보유출시 책임소재의 법률적 문제와 함께 이렇게 제출된 자료는 보험 업계의 영업 데이터로 이용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의 소중한 자산인 질병 정보가 의료 상업화의 수단으로 활용돼 국민건강과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공적 건강보험을 약화시켜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실손보험 대행 청구 강제화 법안은 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유독 보험사에 '종이' 문서로만 의료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사협회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며 청구 간소화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소비자를 위해 변하려는데 이를 반대하는 일부 이해당사자들 때문에 무산돼서는 안 된다"며 "법안이 처리되지 못한다면 소비자들은 계속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3차 진료기관인 대형병원은 이미 시범 시행 중이며, 전자문서 정보 수령으로 다수의 의료소비자가 편리함을 경험을 하고 있다"면서 "또한, 이미 연말 정산 시 의료비 사용 정보도 전자문서를 통해 활용되고 있으며, 병의원에서 발행하는 처방전과 투약의뢰서 등도 전자문서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국회에서 이 안건이 처리 되지 못 한다면 소비자들은 고스란히 그 불편함을 지속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처지"라면서 "이는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3400만 이상의 실손보험 가입 소비자들이 이해당사자의 일방적 싸움에 소비자의 주권을 침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에서 ‘동의’로 선회한 상태다.  금융위는 "중계기관을 심평원에 위탁하는 경우, 의료계가 심평원의 정보집적 및 향후 비급여 의료비용 심사 등을 우려하고 있는 바, 서류전송 업무 외에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열람 및 집적할 수 없도록 법률에 명시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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