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지난 88년 1월 세계보건장관회의에서 참가 148개국이 에이즈 예방을 위한 정보교환, 교육홍보, 인권존중을 강조한 `런던선언' 을 채택하면서 제정되었다. 처음 환자가 발생한 80년대에는 걸리면 죽는 무서운 질환으로 인식되어 이를 타파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매년 이 날이 되면, 국제 기구와 세계 각국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온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이하면, 혈액과 따뜻한 마음을 의미하는 레드리본(Red Ribbon)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지지하며 이해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질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예방책을 전달하며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HIV/AIDS는 많이 알면 극복할 수 있는 병이다. 차별이나 편견이 없으면 병이 전염되는 것을 막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에,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HIV와 에이즈에 대해 제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에이즈와 HIV는 다르다
흔히 HIV 감염과 에이즈를 혼동하는데, 모든 HIV 감염인이 에이즈 환자는 아니다. HIV 감염인ʼ은 체내에 HIV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총칭하는 말로 넓게는 병원체 보유자, 양성판정자, 에이즈 환자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ʻ에이즈 환자ʼ는 HIV가 몸 속에 침입해 면역력이 떨어져, 각종 감염성 질환이나 악성 종양 등 여러 합병증이 생긴 환자를 말한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나 증상이 없는 HIV 감염인 모두 다른 사람에게 HIV를 전파시킬 수 있다.
△ HIV 감염 후 수 년간의 무증상 기간을 거쳐 생명을 위협하는 에이즈로 진행
치료를 받지 않은 HIV 감염인의 자연 경과는 크게 ▲급성 감염기, ▲임상적 잠복기, ▲증상기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병의 진행 속도는 사람마다 개별적인 차이가 있지만, HIV 감염의 임상 경과는 대개 서서히 진행된다.
초기 HIV에 감염된 급성 감염기에는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거의 없다. 일부 환자(약 50-70%)는 감염 후 약 2~4 주째에 발열, 근육통, 관절통, 식욕부진, 메스꺼움, 설사, 복통 및 피부발진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다른 병에 걸리더라도 느낄 수 있는 증상이다. 대개의 특별한 치료 없이 자연히 호전되어, 단순히 몸살 감기에 걸렸다가 좋아진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 급성 감염기의 증상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평균적으로 약 8~10 년 동안 아무런 증상 없는 임상적 잠복기에 접어든다. 이 기간에는 증상을 느낄 수 없어도 HIV가 몸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증식하는 시기이므로 몸 안의 면역체계는 서서히 파괴되어 가며 다른 사람에게도 감염을 시킬 수 있다.
수년 간의 무증상기가 지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열, 식은 땀, 피로, 두통, 체중감소, 식욕부진, 불면증, 설사 등의 초기 증상기가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 좀 더 병이 진행되어 면역력이 더욱 저하되면, 아구창, 구강 백반, 칸디다질염, 골반감염, 다양한 피부병들이 나타날 수 있고, 생명을 위협하는 기회감염 또는 악성종양 등의 합병증도 발생할 수 있다. 다행히 이제는 HIV에 대한 강력한 항바이러스제의 개발과 효과적인 치료법이 등장하면서 기회감염 등 합병증의 빈도는 현저히 감소하고 있으며, 동시에 HIV 감염인의 수명도 점차 연장되고 있다.
△신규 HIV 감염인이 감소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대한민국
지난해 전 세계 신규 HIV 감염인은 180만명으로 220만명이었던 2010년과 비교해 약 18% 감소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지난해 새롭게 신고된 감염인이 1,191명으로 2000년(244명) 대비 약 4.9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는 등 지난해 누적 HIV 감염인이 1만 2천 명을 넘어섰다. 게다가 국내 신규 환자의 약 75.2%는 성생활이 활발한 20~40대의 젊은 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HIV 감염인이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감염을 전파시킬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가 시작되면서 HIV 감염 환자의 기대 여명이 높아져, , 기존 감염인의 노령화도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생존하고 있는 HIV/AIDS 내국인 12,320명 중, 감염 신고 당시 연령을 기준으로 2017년 연령을 산출한 결과 50세 이상 감염인이 4,401명(35.7%)으로xvii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감염 경로 대부분 성 접촉,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전파되지 않는 HIV
HIV 감염의 전파 경로는 감염자와의 성 접촉, 오염된 혈액이나 혈액제제에의 노출, 모자간의 수직감염, 오염된 주사바늘의 공동 사용 및 의료인의 직업적인 노출 등이 대표적이다. HIV 감염인과 함께 음식을 먹거나 손을 잡거나 같이 운동을 하는 등 일상생활을 공유한다고 해서 감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기나 벌레를 매개로 하여 감염되었다는 보고도 없다.
국내에서는 HIV 감염인과의 성접촉이 주된 HIV 감염 경로이다. 단, 1회 성관계로 HIV에 감염될 확률은 평균 0.1~1% 정도이다. 그러나, 적은 확률이지만 단 한번의 성관계로도 감염은 될 수 있으므로, 콘돔 사용을 습관화하고 모르는 사람과 콘돔없이 성관계를 가졌다거나 성관계 파트너가 여러 명이거나 상대방에게 여러 명의 파트너가 있는 경우, 어떤 성병이든 앓은 경우에는 정기적으로 HIV 검사를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국내에서는 여성이나 남성 이성애자들이 스스로 감염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국내 통계를 살펴보면 여성도 매년 100명 정도가 신규 감염인으로 확인되고 있고, 이로 인해 이성에도 감염될 수 있다. 즉, 성접촉을 하는 모든 사람이 HIV/AIDS 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성 행위 경험이 있는 성인이라면 HIV 검사를 한 번이라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전국 보건소에서 익명으로 HIV 감염 여부 확인 가능
HIV 감염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1) 항체 검사법, 2) 항원 검사법, 3) 유전자 검사법 등이 사용된다. HIV 감염 검사는 국내 대부분의 병원이나 보건소 등에서 혈액 검사를 통해 진단할 수 있다. 보건소에서는 무료로 익명검사를 받을 수 있으며, 결과 확인은 일반적으로 3~7일이 소요된다. 또한, 서울시 전체 보건소에서는 손가락 천자(혈액 한 방울)를 통한 신속 검사도 시행 중이며, 이는 20분이면 검사 결과를 알 수 있다. 단, 이는 에이즈 감염이 의심되는 행동이 있는 날로부터 12주가 지난 시점에 받아야 한다. 이 시기 전에는 항체가 검출되지 않아 음성 판정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소 등에서 진행된 1차 검사에서 한번 양성이 나오면 다시 한 번 선별 검사를 시행하고, 2번 연속 선별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2차 확진 검사를 하게 된다.
△치료법의 발전으로 1일 1회 1정으로 HIV 관리 가능, 감염인의 생존율도 현저히 증가
지난 30년간 전 세계적으로 HIV 감염을 극복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이어져 왔다.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현재까지도 표준 치료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세 가지 종류의 약을 동시에 사용하는 3제요법을 HIV 억제 효력을 유지하는 해법이 찾아졌고, 이후로도 환자들의 바이러스 억제 효과, 복약 편의성 및 부작용 문제까지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치료제가 끊임없이 연구, 개발되었다 . 그 결과, HIV/AIDS는 고혈압, 당뇨병 등과 같이 꾸준한 치료를 통해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2013년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단일정복합 HIV 치료제가 최초로 식약처 승인을 받으면서 하루 한 알이라는 편리한 HIV 약물치료 공식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그 결과, 국내 HIV 감염 환자들의 복약 순응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켜,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HIV 감염인은 장기 치료 과정 속에서도 우수한 바이러스 억제 효과를 유지하는 동시에 약물 이상 반응이나 고령화에 따라 동반될 수 있는 부작용 우려가 적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치료제를 필요로 했다.
지난해 출시된 단일정복합제 ‘젠보야’는 여러 임상을 통해 기존 치료 유무에 관계없이 장기간 일관된 바이러스 억제 효과는 물론 신장 및 골밀도 관련 이상반응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을 입증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치료 옵션을 제시하며, 국내 HIV 치료제 시장을 주도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HIV는 완치가 될 수는 없다. 때문에, 꾸준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HIV는 치료 중간에 갑자기 중단하면 바이러스가 더욱 활성화 될 수 있다. 따라서, 꾸준히 약물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HIV는 확실한 전파경로가 있어 적극적인 예방 노력을 통해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검진을 통한 신속한 치료이다. 이미 감염 사실을 인지하고 치료를 시작한 환자들은 체내 바이러스양이 적어 성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위험이 적다. 하지만, HIV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높아 혹시 검사 과정과 결과가 노출될 것을 우려해 많은 사람이 검사를 받는 것조차 꺼려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검진을 받지 않은 일부 HIV 감염인들은 본인 스스로 감염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타인에게 HIV를 전파하게 될 수 있다. HIV 고위험군이라면 검진을 통해 감염 여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만약 감염되었다면 빠르게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지난 2월에는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의 ‘트루바다(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디소프록실푸마르산염)’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고위험군 성인에서 성관계로 매개되는 HIV-1 감염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안전한 성관계 수칙 준수와 병행하는 ‘HIV-1 노출 전 감염 위험 감소 요법(PrEP; Pre-exposure prophylaxis)’의 효능∙효과를 추가 승인 받으며 국내에 PrEP을 통한 예방도 가능해졌다.
PrEP은 HIV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이 사전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을 복용하여, HIV-1 바이러스에 노출이 되었을 때 바이러스의 세포 내 증식 가능성을 낮추는 방법이다. 현재 HIV 검진 및 조기 치료, 노출 후 예방요법, 남성포피 제거술, 콘돔 사용 등과 함께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세계보건기구(WHO) 등 주요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비롯해 대한 에이즈학회 에서도 권고하는 대표적인 HIV/AIDS 예방법이다.
트루바다 PrEP의 효과는 실제 국가 및 지역에서의 HIV 신규 감염인 수의 변화를 통해서도 꾸준히 입증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트루바다의 노출 전 감염 위험 감소(PrEP) 요법 도입 3년 차인 2015년, HIV 신규 감염인 수가 2012년 대비 약 44% 감소 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런던에서도 PrEP 요법 도입 이후 2015년 10월부터 1년 간 신규 감염인이 전년동기에 비해 32% 감소했다. 호주 빅토리아 주는 PrEP 요법 도입 후 상반기 신규 감염자 신고 건이 전년동기 대비 절반 수준으로 나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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