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트)알코올에 젖은 한국, 의사들의 알코올은?

임재현 원장의 <영화속 의학이야기>

주색잡기에 능해야만 영웅이 될 수 있나요? 봉건적 시대의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면, 영웅 되기는 쉬울 수도, 혹은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현대 우리 사회에서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른바 갑을 관계에서 벌어지는 주색잡기의 좌판은 폭력적인 권력의 성향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에서 보여준 샐러리맨의 단면처럼, 술을 잘해야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 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숙취 상태로 출근하고, 점심에는 술 깰까봐 해장술 마시고, 어둠이 내리면 또다시 술 약속 찾아 방황하는 우리들이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해보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같이 죽자고 마시는 우리의 술자리 문화, 그들에게는 재미있고 특이한 대한민국의 문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자랑하고 발전시켜야 할 문화는 아닙니다. 오늘도 술을 강요하고, 술에 관대하고, 술로 친해지고, 술로 뭉치는 대한민국, 바야흐로 연말을 맞아 대한민국 전체가 알코올에 젖어가고 있습니다. 

세계 보건기구 WHO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벨라루스, 몰도바, 리투아니아, 러시아 등에 이어 세계 15위, 아시아에서는 1위를 기록했습니다. 게다가 증류주 기준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의 1인당 알코올 소비는 불명예스럽게도 1위입니다. 물론 소주 소비량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지만, 재미로 웃고 지나갈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이 총기 회사의 로비에 밀려 총기 규제를 강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주류 회사들의 치열한 광고 전략에 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소주 한잔에 삶의 고단한 짐을 내려놓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술을 많이 마시는 것 뿐 아니라 술을 강권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먹이거나 먹어야 하는 술, 이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 강요하는 사회, 이것은 우리가 꼭 없애야할 할 문화입니다.

만약 승객의 생명을 책임지는 여객기 기장이 만취상태라면 어떨까요? 영화<플라이트>는 항공기 사고와 관련된 영화이지만, 특이하게도 사고를 떠나서 기장의 음주 여부가 핵심이 되는 영화입니다.

예전 인도네시아 상공에서 발생한 에어아시아 소속 항공기의 실종은 영화<플라이트>의 도입부와 아주 유사합니다.  에어아시아 QZ8501 편은 인도네시아를 출발하여 싱가포르로 향하던 중, 이륙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난기류를 만나서 고도를 상승하려고 했고, 그 이후에 연락이 두절됐다고 하는데, 영화<플라이트>에서는 생생하게 그 비슷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플라이트>는 2013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 노미네이트 되었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준 영화입니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연출과 덴젤 워싱턴의 연기가 빛을 발하고, 깊은 내면의 성찰이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항공 영화들 사이에 묻혀 그 빛이 바랜 구석이 있어 조금 아쉽습니다. 영화<플라이트>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뛰어난 실력의 기장 휩 휘태커는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 때문에 이혼하고, 자식과도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운명의 그 날, 그는 정원 102명의 올랜도 발-애틀랜타 행 사우스젯 227 항공기를 몰게 됩니다. 그러나 이륙 10여분 후 비행기는 강한 난기류에 빠지게 됩니다. 휩 기장은 비행기의 고도를 상승시켜 난기류를 빠져나가는 듯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체 결함이 발생하고 사우스젯 227기는 속수무책으로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조종불능에 가까운 항공기를 파일럿 휘태커는 뛰어난 기지를 발휘하여 기체를 뒤집어 활공하며 기적적으로 비행기를 비상착륙 시킵니다.

100% 사망의 위기에서 95% 승객의 목숨을 살려낸 영웅 휩 기장, 하지만 그의 음주 사실은 그의 발목을 잡고,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갑니다. 뛰어난 실력의 기장, 그의 영웅적인 비행과 알코올 중독 사이에서 그는 인생 최대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과거 술 취한 의사가 응급실에서 환자를 봉합 수술한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술 취한 상태로 진료를 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환자의 생명이 다루는 고난도의 수술일 경우라면 더욱 외과의사의 음주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예외를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어젯밤 부서 회식으로 과음을 했고, 아침에 숙취가 가시지 않았다고 수술을 연기하는 외과의사가 있다면 칭찬받을까요? 아니면 손가락질을 받을까요? 아마도 수술을 연기하는 외과의사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플라이트>와 비슷한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뛰어난 외과 의사A가 있습니다. 그의 수술 실력은 최고라서 아무리 어려운 케이스라도 성공률이 높습니다. 어느 날 그의 동료 의사가 수술하던 중,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여 동료를 도와 주기위해 수술에 투입됩니다. 그의 뛰어난 기술로 환자는 위기를 넘기고 생명을 건지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외과 의사A가 음주 상태 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는 도마 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당시에 비번이라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응급 호출을 받고는 생각할 겨를 없이 수술에 뛰어든 것입니다. 환자를 살린 의사, 그러나 술을 마신 의사, 과연 정의의 추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까요?

의사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아침 출근할 때, 음주 단속기를 병원 입구에 설치해 체크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의사들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알코올 소비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이고, 음주량에서는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술 마시는 의사들의 개인적인 생활까지를 규제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중요한 수술을 앞두고 과음하는 의사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적정선이 어디인가를 정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의사 개인의 자격을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화<플라이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학 입시를 위한 에세이를 쓰기위해, 아들은 아버지 휘태커 기장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휘태커는 웃음으로 답합니다.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비행기를 모는 기장, 사람을 다루는 의사, 그 진정한 자격은 개인 스스로가 결정해야하는 어려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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