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예방의학교실에 들어가 예방의학과 보건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내 일생을 통해 아직도 인간적인 정감과 존경심을 품고 있는 몇 분중 한사람이 장기려박사이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민간건강보험운동을 주도했던 채규철선생에 대한 생각도 날 때가 많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의과대학 본과에서 외과학의 강의를 받았고 임상실습도 직접 지도를 받아서 가까운 친근감을 느끼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규철선생과 나 그리고 당시 복음병원에서 일했던 장선생님은 여러번 만난 일도 있었다.
그 분은 일반인에게는 이북에서 김일성의 맹장수술을 해 준 분으로 알려져있다.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바에 따르면 당시 김일성장군이 맹장염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되자 반동분자인 장박사를 그 곳 사람들이 완전히 믿지 않아 수술실 옆에서 소련의사들이 하는 수술이 잘못되지 않나 대기한 것이 와전되어 지금도 김일성의 맹장수술을 해주었다고 한단다. 이 얘기는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다.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들과도 섞여서 살게된다. 그것이 세상사라 본다. 오래전 얘기지만 장박사는 1.4후퇴때 평양에서 남쪽으로 와서 서울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의료기기가 발달하지 못해서 환자진료를 옆에서 지켜보며 교육을 받는 경우가 흔했다. 그당시 무릎이 많이 부어서 고름이 나올 것이라던 환자에게 큰 바늘이 달린 주사기로 직접 선생님이 찔렀지만 고름이 나오지 않고 피만 나왔다. 그러자 여러 학생들과 수습의사들 앞에서 선생님은 솔직하게 제가 오진을 해서 찌르지 말아야할텐데 잘못했다고 환자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의사도 사람이라 오진하는 수도 있다. 이런 오진을 환자앞에서 직접 사과하는 것은 내 기억에 선생님 말고는 없었다. 본인이 직접 만든 부산의 복음병원에서도 수술비가 없어 퇴원하기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나쁘게 말해서 밤에 도망가라고 야반도주를 사주했다는 얘기도 있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자기의 잘못을 직접 시인하고 받아들이는 분은 아마 선생님 뿐일 것이다.
40대에 남쪽으로 내려와 혼자 살다보니 유혹이 많았지만 자기는 한번 결혼했었기 때문에 북쪽에 있는 사모님을 만나기만 기다린다고 말씀하셨다. 말은 쉽지만 이런 분들은 참 만나보기 어렵다. 나 자신이 괴로울 때면 선생님을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의 인간관계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인간관계와 추억은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남쪽에 같이 내려온 아들인 장가용박사도 몇해전에 작고했다. 사람은 사라지지만 아름다운 추억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 인간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살아간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오직 성경에 따라 살다 가신 장기려박사를 생각할 때마다 세상은 각박하지 않고 살아갈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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