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먹골배와 유기농 먹거리

허정 교수의 보건학 60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전 보건대학원장)

일제시대에 서울에 살던 사람은 강원도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무, 배추나 옥수수같은 얘기는 알지 못했다. 서울사람들이 먹는 김장거리는 뚝섬이나 광나루같은 한강유역의 비옥한  강가에서 생산되어 공급됬다. 좀 추억하기 싫은 얘기지만 동대문에서 출발하는 전동차가 오늘날 한양대학교 앞에서 갈라져 뚝섬과 광나루로 갔다. 당시에 인공비료는  없었다. 서울사람들이 먹고 배설하는 인분마차에 실린 인체배설물로 키워졌다. 한때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이승만대통령이 너무 왕십리만 지나면 역겨운 인분냄새가 심해서 서울근교에선 인분을 비료로 쓰지 못하도록 명령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미아리 되넘이 고개는 인분을 가득 실은 마차들이 흘리는 배설물 때문에 일년내내 냄새가 진동했고 윤치영서울시장때 까지만해도 서울시의 가장 큰 이권중 하나가 인분처리권을 누구에게 주느냐였다.

한편 시골에 가면 거의 100%의 사람들이 회충을 가지고 있었고 제대로 썩히지 않은 인분을 채소밭에 뿌려서 菜毒에 걸리는 사람이 흔했다. 채독이란 급성 십이지장충 감염이다. 사람이 배설한 인분을 곧바로 채소밭에 뿌려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피부를 통해 전염되는 급성십이지장충 감염으로 예후가 별로 좋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배추밭에 인분을 뿌리는 일은 없어졌다. 그대신 배추맛이 좀 떨어지게 됬다. 서울사람들이 초가을만 되면 찾는 과일이 먹골배였다. 오늘날 육군사관학교 근처의 배밭에 가면 배나무곁에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서울사람들의 인분을 비료로 썼다. 그만치 배맛도 좋았다. 그것이 바로 먹골배의 비결이다.

요새 젊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끔찍한 얘기가 되겠지만 50~60년전에는 농사짓는데 특별한 비료가 없었다. 부지런한 사람은 퇴비를 만들고 거기에 인분을 뿌려서 농사를 짓는 것이 전부였다. 요새 대단위 축산농가의 배설물처리가 심각하다. 옛날 같으면 서로 앞다투어 수거해다 농사짓는데 썼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다시 바뀌어 이제는 유기농법으로 메뚜기나 개구리가 사는 농토에서 지은 벌레먹은 채소나 농산물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 같다. 외국에서도 인공비료나 농약보다는 수확이 좀 떨어지지만 고작 퇴비나 써서 농사를 짓는 이른바 유기농법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따지고 본다면 사람이나 가축의 배설물을 제대로 처리해서 농사를 짓고 우리들의 먹거리를 충당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유기농이고 무공해 먹거리이다. 공해도 문제지만 우리들의 먹거리도 신토불이란 차원에서 재평가돼야겠다. 그리고 맛있는 먹골배가 다시 서울사람들에게 제공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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