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 환자가 무조건 수술해 달라며 필자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통증이 심하고 분명 어깨 힘줄이 잘못됐다고 믿고 있었다. 어깨 MRI를 봤는데, 수술할 병도 아니었고 수술로 좋아질 구석이 전혀 없는 환자였다.
절대 수술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해줬으나, 오히려 환자는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다며 서운하다고 했다. 의사는 자신의 고유의 지식에 기반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환자들을 진료하고 판단을 내린다.
당연히 그러다 보면 환자가 가족 같고 남 같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요구에 의해서 자신 본연의 판단이 흔들리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가끔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진단서 사건도 일부는 환자에 대한 동정심으로 환자입장에서 진단서를 써줬다가 문제가 됐던 경우이다.
한국의 의료 환경은 수없이 많은 외부 압력 속에서 의사들이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고유의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일관되게 자신의 철학을 관철하며 소신된 진료를 한다면 필자의 경험상 일부 환자들을 서운하게 만을 수는 있어도 대다수의 환자들은 이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는 것 같다. 척박한 한국 의료 환경에서 그래도 진심은 통한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의학적 지식은 결코 쉽게 쌓여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가 되려면 10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10년 가까이 공부해서 의사 면허를 취득할 뿐이다. 이후 최소 10년 넘게 더 공부를 해야 간신히 진료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
결국 20년의 세월을 죽도록 공부해야 간신히 자격을 얻게 되는 셈이다. 그런 지식에 의한 결정들은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물론 현대의학이 여전히 완전하지 않고, 의사로서의 실수도 있는 만큼 그 판단들이 틀릴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지식의 가치가 절대 폄하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도 한 때는 의사들의 잘못된 판단들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고, 못마땅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의사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더욱 고통스러워진 환자들을 도맡아 치료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 선생님들 한 명 한 명은 그 시점에서 최선의 판단들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의 의료 환경은 국민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척박하다. 의사는 최소한의 보호장치 조차 없이 환자를 보고 있으며,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몸과 시간을 모두 희생하며 연구에 몰두하여 전 세계적인 의료 선진국으로 이 나라의 의료 환경을 발전시켜왔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의료수가 하에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의료수가가 낮은 국가는 당연히 의료의 질도 떨어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최상의 의료의 질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의사들 또한 잠시도 쉬지 않고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물론 은퇴하기 직전까지 잠시도 한눈을 팔아서도 안 되고, 편하게 저녁시간을 보내며 인생을 즐겨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한 의사들에게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은 최소한의 보상을 해줄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도 밤을 지새우는 대한민국의 많은 의사선생님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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