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센 '항생제 내성' 인류생존 위협한다

2050년 슈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인한 사망 암 사망자수 앞지를 듯…요양병원 사각지대로

항생제 내성으로 '항생제 개발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과학자들은 ‘항생제 남용 혹은 과다사용이 향후 공공 건강을 크게 위협, 인류를 슈퍼 박테리아의 위협에 맞닥뜨리게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경고해 왔다. 슈퍼 박테리아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2050년경 암으로 인한 사망자수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돼 향후 인류 생존에 있어 최대 위협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항생제 내성이 왜 위험한지, 의료계에서 우려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항생제는 감염병의 치료와 예방에 꼭 필요한 약제이다. 그러나 오남용 시 항생제 내성이 유발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영국 정부는 항생제 내성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2050년 한해에 전 세계에서 1000만명이 수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사망하고, 이 때문에 연간 100조 달러(약11경7220조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세계 보건기구(WHO) 역시 항생제 내성 문제를 경고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WHO는 "세계적인 항생제 내성균 확산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21세기 공중 보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수퍼박테리아 감염사례는 국내에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수퍼박테리아 감염은 2011년 2만2928건에서 지난해 3만8074건으로 늘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을 신종전염병 이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국내 감염률 역시 늘어나고 있는데 정부는 아직 위험성을 잘 모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화학요법학회 배현주 회장은 "항생제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면 메르스나 지카 등에 못지 않은 위기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이러한 다제내성균의 발생과 유행은 신종 감염병보다 큰 파급력을 준다"고 강조했다.

항생제 못쓰는 내성균 늘어나
특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과 더불어 항생제 사용량과 항생제 내성률이 높은 편에 속해 심각성은 커지고 있다는 우려다.

이 때문에 항생제 내성 문제는 진료 현장에서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국내에서는 다제내성균 6종(바코마이신내성황색포도알균, 반코마이신내성장알균,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알균, 다제내성녹농균, 다제내성아시네토박터바우마니균,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속균종)을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료관련감염병’으로 지정하고 2011년부터 100개 의료기관을 통해 표본감시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6월 발표한 2014년 하반기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은 OECD 평균보다 약 1.4배나 높다. 항생제 처방은 요양병원, 동네의원에서 심각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2014년 실시한 항생제 내성실태 조사결과를 보면 종합병원, 병원, 의원, 요양병원의 항생제 내성균 내성률이 2008년에 비해 병원(26.5%→59.3%)과 요양병원(39.3%→68.4%)은 2배가량, 의원(6.6%→48.1%)은 7배 이상 증가했다.

또 다제내성균에 대한 의료 감염병 신고가 2011년 2만2915건에서 2013년 8만944건으로 3.5배나 증가했다. 이 중 반코마이신내성장알균 9.3배,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알균 47.6배, 다제내성녹농균 1.3배, 다제내성아시토박터바우마니균 1.7배,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속균종 3배 늘었다.

대한화학요법학회 김성민 부회장은 "15년 전 미국으로 연수를 갈 때만 해도 카바페넴 항생제가 나오면서 거의 모든 세균들을 잡을 수 있었다"며 "그런데 8년 뒤 돌아오니 내성이 생긴 관계로 안 듣는 균이 병원마다 많았다. 요즘은 병원 내 유행 뿐 아니라 장내세균에도 카바페넴이 안 듣는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장내세균에도 이제는 항생제가 유효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장내 세균이 지역사회로 퍼져나가면 정말 끔찍한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결국  쓸 약이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요양병원 입원 환자 항생제 내성 관리 시급

전문가들은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요양병원 등 노인요양시설을 수퍼박테리아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최근 5년 새 요양병원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전국적으로 1000여개가 넘는 요양병원이 운영 중이다. 이 곳에 있는 환자들은 대학병원 등 3차 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마친 뒤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재활치료 등을 받고 있다. 요양병원으로 간 일부 환자들은 병세가 악화돼 다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한다. 이런 전원 과정에서 환자의 내성균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질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국내 요양시설과 요양병원에서 집단생활을 해온 노인환자에게 기존 치료제(항생제)에 반응하지 않은 강력한 폐렴구균이 발견됐다. 항생제 오남용 때문에 생긴 수퍼박테리아의 일종이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는 “폐렴구균이 항생제 내성을 보이는 것은 흔하지만 이번처럼 거의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보인 균이 보고된 경우는 다른 나라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평균 연령 71.8세의 노인이었고 중풍 등 신경계질환이나 운동장애를 앓고 있었다. 노인요양시설(3명)이나 요양병원(2명)에서 장기간 항생제 치료를 받았다.

오 교수는 “강한 내성균이 발견된 것도 문제지만 요양시설과 요양병원에서 이런 게 발견된 게 처음”이라며 “요양시설과 요양병원에서 폐렴에 걸리기 쉬운 노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기 때문에 균이 옮기 쉽다”고 말했다.

이는 이런 곳에 감염내과 전문의가 없어 내성을 키울 만큼 항생제를 많이 쓰고 있다는 우려다.

배현주 회장은 "현재 요양병원은 항생제 내성의 사각지대"라며 "요양병원 입원 환자들의 항생제 내성을 파악할 수 있는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3차 병원의 경우 감염내과가 있지만 1, 2차 의료기관과 요양병원은 항생제 내성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요양병원 등의 입원 환자들의 항생제 내성을 파악할 수 있는 조사가 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축산업 항생제 오남용도 심각

특히 의사나 환자들 뿐 아니라 '성장촉진'을 목적으로 항생제를 쓰는 농축산업 종사자들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농축산업에서 농약과 항생제를 쓰지 않으면 생산성을 유지되게 하지 못하는 구조적 환경적 때문에 항생제 오남용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축산농가 인증제, 전담수의사제와 같은 항생제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성민 부회장은 "성장촉진제에도 항생제를 많이 사용한다. 항생제의 과다 사용으로 인해 발생되는 폐해에 대해 모든 국민들은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며 "국민들. 그리고 환자들의 인식 부족도 심각하다. 처방하는 의사, 약을 받는 환자들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화학요법학회는 각 의료기관 내 OCS 등 전자차트 프로그램에 탑재할 항생제 오남용 관리 시스템 개발에 나설 전망이다. 이는 의료진을 대상으로 정확한 항생제에 대한 정보를 전달, 병원 내 항생제 남용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학회는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항생제 관리를 교육할 수 있는 에플리케이션과 웹 시스템을 만들고, 더 나아가 병원 내 항생제 오남용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에 있다.


김아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카카오톡
  • 네이버
  • 페이스북
  • 트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