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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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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20:35

여성에 주로 발생하는 류머티스성 질환


차창 밖의 들녘은 평화로웠다. 이제 막 벼 이삭이 팬 초록의 들판이며 한가로운 민가의 모습들. 서울에서 천안까지 차로 2시간 남짓. 그 길을 가면서  홍기자양(19)은 그러나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학교생활은 어떻게 할지, 뇌수술과 다리수술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없는 아버지. 그리고 나의 미래는…. 이런 저런 생각에 그는 온통 푸른 대지조차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았다. 한양대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가고 있지만 완쾌돼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입원을 하기 위해 잠시 쉬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여린 마음에 벌써 눈시울이 붉어져 왔다.
홍양에게 불행이 닦친 것은 중학교 1학년때. 손마디가 붓고 빨갛게 변해 왔다. 동상인줄 알았다. 그러나 동상약은 치료에 별 도움에 되지 못했다. 동네병원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류마티스관절염 진단을 내렸다. 그때부터 약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수없이 먹었지만 몸만 부어왔다. 천안순천향병원에서 1년간 치료를 받았다. 용하다는 한의원도 찾았다. 한 2년정도는 관절이 간혹 아팠으나 그런대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2가 되자 증세가 더욱 악화됐다.


       약과의 전쟁


한양대병원에 입원해 루푸스진단을 받았다. 폐가 많이 망가져 아래부분이 거의 없다고 의사는 무표정하게 설명했다. 입원하자 숨쉬기 조차 어려웠다. 약을 먹었다.스테로이드제라고 했다. 호흡하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이제는 다리에 힘이 없어 걷는 것은 물론 서 있기조차 힘에 벅찼다. 입원기간은 길어졌다. 그는 자신의 병도 걱정이었지만 생활력이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조립부품을 만드는 공장에 다니는 어머니의 수입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군에간 오빠가 빨리 제대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릴 뿐이다.
박미정씨(27)는 상태가 더 안좋다. 양쪽 다리에 인공관절을 넣는 대수술을 했다. 『22살 때인가요. 얼굴에 붉은 반점이 돋기 시작했어요. 몸살기운도 좀 있고 찌푸둥 한게 감기인가 생각했지요.』 피부과에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약을 바르고 먹어도 얼굴의 반점을 사라지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다행히 루푸스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죽을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직장을 쉬면서 치료받을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버지가 후두암에 걸렸다. 집안은 한순간에 엉망이 됐다. 박씨는 의사의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찾는것으로 치료를 대신했다. 한알에 50원하는 알약을 하루에 6개씩 쉬지않고 먹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자신이 2년동안 먹은 약은 부작용이 심한 스테로이드제였다. 얼굴은 땡땡하게 부어 터질 것 처럼 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리에 통증이 심해졌다. 언젠가 부터 계단을 오르거나 걷는 것 조차 힘들게 여져졌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뼈가 다 삭았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의뢰서를 써줬다.


   뼈 삭아 다리 절단


강남성모병원에서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8시간의 대수술 끝에 마취에서 깨어났다.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아래쪽에서 부터 온몸으로 퍼져갔다.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통증이 어느정도 가시자 울음이 쏟아졌다. 다리가 없다는 것보다도 공장에서 받은 100만원의 퇴직금을 다 날리고 그나마 직장생활을 할수 없다는 암담함이 한없이 슬펐다. 목발에 어느정도 익숙해지자 이제는 왼쪽다리의 통증이 심해졌다. 수술한 오른쪽다리도 감염으로 인해 고름이 쏟아져 나왔다.
병원에서는 인공뼈를 빼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월세방의 보증금도 다 날린상태라 이제는 하루 하루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히 영세민 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 보라매시립병원에서 제거수술과 왼쪽다리를 절제했다. 박씨는 지금 스프링 한개를 ㄱ자로 꺾으면 2원을 받는 수작업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새벽 두 세시까지 일하면 3,000개를 꺾을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일당 6,000원을 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15세에 고향인 경북 의성을 떠나 지금껏 일해온 대가가 이런 삶이냐고 그는 말끝을 흐렸다. 
박정희씨(여.52)는 뒤늦게 루푸스에 걸린 드문 경우. 47세에 몸에 이상이 왔다고 박씨는 그때 일을 기억해 냈다. 『평소 감기한번 안걸리는 건강한 체질이었어요.』 어느날 머리카락이 둥그렇게 빠지는 원형탈모증이 왔다. 눈에 광채가 일었다. 햇볕이 없는 날에도 선글라스 없이는 운전하기가 힘들었다. 병원에서는 스테로이드제로 치료가 되면 루푸스라고 진단했다. 거짓말 같이 6개월간 복용으로 눈 부심 현상이 말끔히 사라졌다. 1년정도 그전과 다름없이 생활했다. 야간등산등 무리한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추석전날 포도주스를 먹고 쓰러졌다. 서울중앙병원에서 당뇨판정을 내렸다.췌장이 망가져 정상적으로 인슐린 분비가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루푸스는 재발이 잘돼 피곤하면 설거지를 하다가도 누워있어야 하는데 왜 함부로 생활했느냐고 박씨를 질책했다. 박씨는 처음 루프스 진단을 내린 의사를 원망했다. 그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의 질을 높여야


이제 그는 루프스 박사가 돼 루이사(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의 모임)에 자원봉사자로 나와 상담하는 일을 맡고 있다. 박씨는 발병원인을 끔찍히도 믿었던 친구에게 배반당한 충격때문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김외순씨(46)는 31세때 루푸스를 만났다. 불고기로 식사한후 갑자기 먹은양의 3-4배 가량을 토해냈다. 동네병원을 걸어가는데 눈앞에 짙은 뭉게구름이 낀 것같은 착시현상도 있었다고 말했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고열이 났다. 뇌수막염이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 한달간 입원 생활을 했다. 대림성모병원, 강남성심병원을 거쳤으나 루푸스 진단을 받지는못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확진을 받고 루푸스 환자가 됐다. 김씨는 여러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말초혈관에 염증이 생겨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이 뭉개졌다.
루푸스(전신성홍반성낭창)는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류마티스성 질환으로 피부, 관절, 혈액, 신장 등에 염증을 일으킨다. 루이사 대표를 맡고 있는 방송인 정미홍씨는 『환자자신이 먼저 루푸스가 어떤 질병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진짜 전문가를 만나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도 다 같은 의사가 아니라는 것. 일부 천박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의사들이 루푸스 환자의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정씨의 생각이다. 한양대류마티스내과 배상철교수는 『비교적 흔한 희귀질환인 루푸스는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만큼 치료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배교수는 그러나 『전문의의 치료를 받으면 평균수명을 살수도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에서 삶의질을 높이는 것으로 치료의 방향을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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