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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턴병

  • 고유번호 : 597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32:46

목.팔.다리 원치않아도 ‘흔들 흔들’
  
무의식적인 움직임
평생 노동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박성천씨(가명.40).
그의 꿈은 공사장의 십장이었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룰 무렵 서서히 찾아오기 시작한 병마앞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20층 아파트를 벽돌을 메고 오르내리는 고된 일도 버텨냈던 육체지만 병마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병원은 지척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병원을 갈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병세는 더 악화됐다. 박씨는 자신이 병원을 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가 의사를 만난 것은 사지를 마음대로 움직일수 없는 중증 상태에 빠진 뒤였다. 손과 발은 자신의 의사에 반응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외출은 물론 화장실 가는 것도 혼자 힘으로는 어려웠다.
한 번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기다시피해 집밖으로 나왔다 그만 길을 잃었다. 집에서 불과 100미터 정도를 왔을 뿐인데도 집이 어디인지 분간할수 없었던 것이다.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병균에 침범당했다. 심한 치매증상도 나타났다. 그날 이후 파출부 일로 근근히 생계를 꾸려가던 부인은 죽을 때 죽더라도 병명이나 알자는 심정으로 병원을 찾았다.


가난이 죄…
내원당시 박씨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목을 불규칙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전형적인 무도증세를 보였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일명 ‘도리도리춤’을 연상하리 만큼 목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는 슬하에 22살된 아들과 20살인 딸을 두고 있다. 그런데 잘 자라던 딸에게 문제가 생겼다. 13살 되던 어느해 부터 정신지체가 왔다. 말을 더듬고 사람들을 피해다녔다. 책도 읽지 못하고 불안해 하는등 심각한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양쪽 팔다리가 뻣뻣해져 왔다.
길을 가다가 옆으로 힘없이 쓰러지는가 하면 이유없이 얼굴을  찡그리고 안구의 움직임도 힘이 없어졌다. 입술은 튀어나오고 머리는 기형으로 변했다. 스무살이나 된 다 큰 처녀지만 그 역시 아버지 처럼 스스로 할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는 2세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
어머니는 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다. 제멋대로 내버려 두면 무슨 변고가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세상에 한스런 일도 많지만 자기 가족처럼 기구한 인생은 없을 것이라고 말문을 잇지 못했다.
한 번은 온 방안에 음식물을 쏟아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딸에게 같이 죽자고 껴안고 한없이 울었다. 이 가족에 ?희망은 없어 보였다. 죽음만이 긴 고통의 사슬을 끊어 줄 유일한 대안인 것 같았다. 그러나 모진게 생명이라고 모녀는 오늘도 끈질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박씨는 3년전 사망했다. 의사의 치료약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날로 퇴원해 두 번 다시 병원을 가지 않았다.


남편에서 딸에게로
설사 치료법이 있다고 해도 엄청난 치료비를 감당할수 없어 중도에 퇴원했을 것이다. 아내는 병원을 나오면서 차라리 잘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망령된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아내의 소원은 죽은 남편은 남편이고 이제 막 피어난 딸이 제 앞가림이라도 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언제까지 뒷바라지를 해줄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장애자인 딸을 홀로 두고 먼저 갈수는 없지 않느냐고 울먹였다.
그 역시 황폐해진 정신과 고된 육체노동으로 몸이 많이 상한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마저 힘들어 하면 딸아이는 어떻게 되나 생각하면 한시도 그냥 앉아 있을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한 번은 미친사람처럼 종로 거리를 헤메다닌 적이 있다고 했다. 하늘은 푸르고 부딪치는 인파마다 거리에는 활력이 솟았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그 높은 빌딩, 넘치는 음식들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남들은 다 저렇게 건강하고 잘 사는데 왜 나만 하필  이런 불행이 왔는지 그는 세상을 향해 절규 했다고 한다.
‘자신의 피붙이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년이 살아서 무엇하냐’고 자살까지 결심했으나 그때마다 번번히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딸 때문에 실패했다고 목메어 했다. 아들은 오래전에 집을 나가 생사를 알수 없다. 그는 냄새나고 구질구질한 집구석이 싫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헌팅턴병(Huntington’s disease)이 한가족을 파멸로 몰고 간 것이다.
헌팅턴병은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는 중추신경계 퇴행성 질환.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유병률이 인구 10만명당 4명정도. 한국은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으나 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자는 무도성 무정위운동(choreoathetoid movement)과 인지 및 정서장애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30-40대에 호발하며 증상발병후 대개 15-20년내 사망한다. 병리학적 검사에서 미상핵,조가비핵,창백핵에 신경원 소실과 신경교증을 보이고 다양한 정도의 대뇌피질 위축이 관찰된다. 최근에는 4번 염색체 이상으로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부검을 하면 확실하게 헌팅턴 병을 진단할수 있다. 사망한 박씨의 부검결과 대뇌와 소뇌 무게의 비가 5:7로 정상인의 8:9보다 작아 대뇌 위축이 있음을 확인할수 있었고 뇌실확장과 심한 미상핵의 위축이 보였다. 현미경적으로는 대뇌 피질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쉽지 않아 육안으로 대뇌 피질이 얇아지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용이하다.


4번염색체 이상
주로 대뇌피질의 세 번째 층에서 변화가 나타나며 신경원 소실과 신경교증을 관찰할수 있다. 어린 나이에 발병할수록 유병기간이 길며 병리학적인 변화가 심하고 뇌실 용적이 크게 증가해 치매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밖에도 배뇨장애, 발기부전, 손발의 다한증등이 올수 있다. 청소년기에 발병률은 전체의 10% 정도이며 20세 이전에 증상이 나타난다. 이들은 진단후 보통 8-10년 정도 생존한다.
이 병은 임상적 증상만으로는 진단이 어렵다. 따라서 치매가 동반되는 다른 질환과 구별해야 한다. 헌팅턴 병으로 진단된 환자중 상당수가 알코올 중독이거나 정신박약 혹은 노인성무도병,파킨슨병등으로 오진되기 때문이다.
특히 유구적혈구신경증은 헌팅턴병과 임상적으로 감별이 어려워 헌팅턴 병이 의심되는 환자는 반드시 유구적혈구 존재 여부를 검사해야 한다.
연세대영동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이명식 교수는 30-50세 경부터 스스로 원하지 않는 움직임이 나타나며 치매가 시작돼 진행하는  헌팅턴병의 마땅한 치료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뇌의 미상핵과 조가비핵에서 변성을 보이는 헌팅턴병의 완치는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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