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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론병

  • 고유번호 : 595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31:36

통증심한 腸궤양… 결핵성장염 오진 가능       


먹으면 토하고…
사랑을 하면서도 건강 때문에 헤어지는 연인들이 있다. 건강하기만 하다면 평생을 사랑할텐데 아프기 때문에 그 소중했던 시간들도 어느날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아프기 때문에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다. 흔치 않지만 우리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고 사랑의 위대한 힘을 새삼 깨닫는다.
전은주씨(35.가명)는 불치병에 걸린 환자다. 남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사랑 했으므로 결혼했고 아기도 낳았다. 지금 전씨는 남편의 사랑과 자식의 재롱을 보며 아픈 것은 몸이지 정신은 아니라고 말한다.
대학3학년 때 전씨는 빈혈로 쓰러졌다. 한참후 깨어났을 때는 온몸이 고열과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가까운 동네 병원을 찾았고 거기서 결핵성장염 진단을 받았다. 2년여 동안 결핵약을 먹었다. 그러나 차도는 없고 증세는 더 심해졌다.
의사는 약 용량을 늘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장이 아프다 소화가 안된다고 호소해도 별다른 처방을 내놓지 못했다. 음식을 먹으면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옆에 앉은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났다. 그는 그 소리가 꼭 천둥번개 치는 소리와 같았다고 말했다. 장이 뒤틀리고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먹으면 바로 토해냈다. 장에까지 음식물이 도달하지 못하고 바로 넘어왔다. 안되겠다 싶어 필동 중대부속병원을 찾았다. 거기서도 결핵성장염으로 진단하고 결핵약만 처방해 줬다. 투병생활이 길어질수록 몸은 점점 야위어져 갔다.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겼다. 거기서 소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크론병이라는 낯선 병명을 얻었다.
수술후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도 사라지고 하루 생활하는데도 지장이 없었다.
2년 휴학후에 복학했다. 그리고 졸업했다. 회사도 다녔다. 이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우직한 남편은 몸이 약한 그를 끔찍히도 생각했다. 91년까지 3년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전씨는 회상했다.


수많은 치루로 고통의 나날


그런데 행복도 잠시 이번에는 항문에 치루가 발생했다. 나중에 그는 치루가 크론병의 합병증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정도 고통 받았으면 됐지 싶었는데 치루라니 앞이 막막했다. 치루도 한두개가 아니고 여러개가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손목 발목등 관절부위가 아파왔다. 서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효과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치루는 더 심해져 고름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치질전문병원을 찾았다. 수술을 할수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수술하면 쉽게 낫지만 당신은 수술해도 안된다고 했다. 그곳 의사는 치루를 째는 것으로 치료를 대신했다. 장이 아픈 것이 몸을 찢는 것이라면 치루의 고통은 아예 살을 도려내는 것 같다고 진씨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96년 경희대병원에서 수술로 항문을 없애고 대신 인공항문을 달자고 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항문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 아프지 않다는 말에 쉽게 수술에 동의했다. 지금도 항문이 없는 것이 후회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치루의 고통은 끔찍했다.
대변을 왼쪽배로 받아내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아프지 않고 이 상태만 지속된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다. 그 뒤 1년후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아빠를 닮아서인지 건강하고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 가끔 우울해 하던 남편도 아들을 보면서 활기를 얻고 있다.
사랑으로 받아준 남편이 한없이 고맙다고 그는 울먹였다. 사랑하는 남편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존재 할수 없을 것이라며 남편에 대한 감사함을 표했다. 10년이 넘는 투병생활기간 자신을 지켜준 남편,그리고 친정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지울수 없다. 


심각한 체중감소


임형동씨(27.가명)도 크론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임씨는 만기를 10개월 앞두고 의병제대 했다. 임씨에게 생긴 엄청난 수의 치루를 군병원에서는 감당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에서 추천해준 치질전문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후 다행히 치루로 인한 불편은 사라졌다.
그런데 음식을 먹기만 하면 설사가 나왔다. 84kg이나 됐던 체중은 계속되는 설사로 불과 몇 개월 사이 68kg으로 줄어들었다.
임씨는 음식과 병상태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싱거운 음식을 먹으면 좀 괜찮은데 맵고 자극적인 음식은 바로 설사로 이어졌다. 그는 평생 약을 먹어야 된다는 사실보다 완치되지 않는다는 것에 더 큰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그는 합병증의 공포 때문에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날도 있다고 털어놨다.
자매가 크론병에 걸린 경우도 있다. 동생에게 먼저 발병했고 나중에 언니가 이 병에 걸렸다. 여기 저기 용하다는 대학병원을 전전했지만 차도가 없자 그들은 지금 민간요법으로 크론병과 싸우고 있다.
회음부주위에 난 수많은 궤양과 종양들이 걷는 것 조차 힘들게 할 정도로 상태가 많이 악화됐다. 그들은 현대의학으로는 내 병을 고칠수 없으니 이제는 병원을 찾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천의 얼굴 가진 불치병


국내에 2,000여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크론병은 지난 1932년 크론이라는 의사가 처음 학계에 보고해 세상에 알려졌다.
발병원인이 다양해 딱히 어느것 때문이라고 말할수 없으나 감염설, 유전적 요인,면역기능이상,환경적 요소,정신적 이유등으로 짐작하고 있다.
주로 소화기 장관에 침범하며 20대에 발병률이 가장 높다. 치료되는가 싶으면 어느덧 재발을 되풀이해 현재까지 완치법은 없다.
의사들은 이 병을 천의 얼굴을 가진 불치병으로 표현하고 있다. 원인도 다양하고 증상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스테로이드제를 기본으로 하는 내과적 약물을 주로 쓰고 있으나 잘 조절되지 않아 반복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결국 소장까지 잘라내야 하는 운명을 맞게 되는데 이때는 소장에 음식물이 전달되지 않아 영양흡수 장애로 사망하게 된다. 맹장이나 결핵성장염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인구 10만명당 10명정도의 발병률을 보이며 남녀 차이는 없다.
경희대병원 내과 김효종 교수는 임상증상, 내시경이나 혈액검사등으로 확진할수 있다며 정확한 진단이 치료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김교수는 스테로이드나 항암제로 쓰던 면역억제제 항생제등이 사용되고 있으나 앞으로는 새로운 치료제가 속속개발될 예정에 있어 크론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 FDA는 최근 개발된 신약인 인플릭시마를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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