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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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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30:00

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올해 다섯살 난 김상수(가명)어린이. 여느 아이같이 ‘엄마’ ‘아빠’ 등의 간단한 말도 할 수 없다. 겨우 옹알이는 정도. 말만 늦은 것이 아니고 신체의 모든 기능이 정상아보다 뒤떨어진다.
키도 작고 몸무게도 적다. 걸어다닐 수는 있지만 뛰지는 못한다. 왼쪽 다리가 바깥쪽으로 심하게 휘었기 때문. 교정기를 부착했어도 부자연스럽다. 대소변 역시 가릴 수 없다.
눈에는 두꺼운 안경을 썼다. 그것도 노인들이나 쓰는 볼록렌즈를 착용해 심각한 안질환이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상수 어머니 박길례씨(37). 한창 어리광을 부리고 뛰어 노는 다른 집 애들을 볼 때 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상수는 정상분만으로 산모들에게 인기가 높은 강남의 C병원에서 태어났다. 퇴원 3일만에 동공이 하얗게 돼는 이상을 발견했다.
병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퇴원하라고 했는데 다른 병원에서 선천성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선천성백내장


양수검사 등으로 산전진단도 가능하다는데 출생후에도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병원이 야속했다. 울지도 잘 못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분명 뭔가 이상이 있는 듯 싶었다.
병원을 상대로 따지고도 싶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눈 때문에 다른 기능이 늦어지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일이 지나고 돌이 지나도 정상적인 발육을 하지 못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근육병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또 무슨 병인지 진단이 안된다고도 했다. 정밀 검사결과 ‘노외병’판정을 받았다.
생전 처음 듣는 질병이라 어안이 벙벙하고 앞이 막막했다. 의사는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한 순간 눈앞이 깜깜했다. 그러나 이내 기운을 차려 이것 저것 물어봤다.
그때마다 의사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 사태가 심각함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과의 싸움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노외가 이 병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커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외면했어도 사랑스런 내 자식을 위해 부모가 뭔가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듯 싶었다.
그래서 재활치료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백방으로 뛰었다. 뾰족한 대답을 얻지 못하는 날이 되풀이 되고 하늘을 원망했다.
세상에, 이 밝은 대명천지에,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느냐고 메아리 없는 허공을 향해 소리도 쳤다.
좌절과 분노. 그러나 이제는 마음을 다 잡았다. 하루종일 울어도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요즘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주요한 일과가 됐다.
“처음에는 창피했지요. 다른 애들과 비교되니까요. 지금은 애가 손을 끌기 전에 집앞 놀이터로 나들이 갑니다. 애 엄마가 자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주변 시선은 상관없어요. 따스한 햇볕이 상수의 온몸을 비추고 그래서 아들이 웃음을 짓는 것을 보는 것은 이 세상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행복하니까요”


청각기능 뛰어나


밖에 나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음악을 듣는 것이 상수의 즐거운 생활 중의 하나다.
“애가 음악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화나거나 짜증을 부릴때도 음악을 틀어주면 좋아하거든요. 아마 임신중에 피아노 레슨을 한 것이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박자도 잘 맞춘다.
클론의 ‘돌아와’에 특히 관심이 많다. 딴 짓을 하다가도 TV에서 이 노래가 나오면 금방 눈길을 돌린다.
다른 것은 다 열등하지만 청각만큼은 뛰어나다. 그래서 소리에 민감하다. 뭐든지 두드리려 든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만족한다. 물건을 주면 던져서 떨어지는 소리를 즐긴다.
음식은 칼국수나 라면 등 부드러운 면 종류를 즐겨 먹는다. 씹는 기능이 약해 딱딱한 음식이 입에 들어가면 뱉어낸다.
상수는 3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간다. 무슨 원인 치료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 사이 무슨 상황 변화가 있는지 점검해 보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요로에 결석이 생겨 약을 먹고 있다.
결석이 심해지면 비뇨기과에서 레이저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어떤 때는 희미한 희망이, 어떤 때는 암흑같은 절망이 가로막지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려고 애쓴다. 애 아빠와 상의해 둘째애는 낳지 않기로 했다. 이해해 주는 남편이 고마울 따름이다.
광명에 사는 4살된 김모 어린이도 상수와 같은 노외병 진단을 받았다.
현재는 폐렴이 심해 광명성애병원에 입원해 있다. 숨이 차고 열이 나며 가래가 심하게 끼었다. 이 병원 소아과 안병문과장은 “심한 가래 외에도 소화가 안돼 앞으로 1주일 정도는 더 치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입원했을 당시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았으나 다른 치료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버지 김씨는 “병원에서도 병 자체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나마 6살 누나가 동생을 잘 돌봐줘 위안을 삼고 있다.


희귀병중 희귀병


노외병(Lowe)은 안, 뇌, 신(Oculocerebrorenal Syndrome of Love)에 동시에 이상이 나타날 경우 발병한다.
선천성백내장, 근긴장도 저하, 성장 및 발달 지연, 인지능력 부족, 신세뇨관 기능약화를 특징으로 하는 반성열성유전. 모계의 이상으로 아들에게만 발병한다. 원인은 X염색체에 존재하는 OCRL(OCRL-1)의 돌연변이 때문.
세계적으로 200례정도 보고됐으며 대부분 10~20대에 신부전이나 감염 등으로 사망한다.
서울대 소아과 정해일 교수는 한마디로 “치료법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또 “눈 뿐만 아니라 뇌에도 이상이 있어 정상생활을 할 수 없고 세뇨관 이상이 있는 신장장애를 가져와 만성신부전증에 시달리게 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소변으로 아미노산 칼슘 요산 등이 빠져나가 몸이 산성화돼 알칼리약과 전해질을 보충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국에서도 치료예가 없는 불치병으로 앞으로 유전자 치료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
서울중앙병원 소아과 유한욱 교수는 “노외병은 희귀질환 중에서도 희귀질환”이라고 설명하고 “완전한 치료법이 없어 환자는 물론 의료진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는 현재 5살, 11살의 노외병환자가 있는데 모두 정상아보다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고 11살 어린이의 경우 경기가 심해 임시방편으로 항경련제를 투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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