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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싱증후군

  • 고유번호 : 587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28:21

소리없이 찾아온 불행


불행은 소리도 없이 찾아온다. 어느날 슬며시 다가와 처참한 결과만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져 간다. 미쳐 손 쓸 겨를도 없이, 아무런 대책이 없는데 갑자기 쳐들어 온다. 그러나 불행은 이미 오래전 부터 전조증상을 보인다. 다만 자신만 모를 뿐이다. 육체에 퍼져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의 경우는 더욱 확연하다. 괜찮겠지, 설마 나한테…. 대전에 사는 44세된 신순희씨(여).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질병이 왔다”고 말했다. “증상을 느낄만한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순희씨는 “어느날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평소 자기와는 다른 생소한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어 당황했다”고 그는 그때의 충격을 표현했다. 둥근얼굴, 꽉찬 달덩이 처럼 자신의 얼굴이 월상안 이었다고 말했다. 이상하다 싶어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전반적으로 몸이 부었다는 것을 알았다. 주위 사람들은 ‘몸이 좋다’는 표현을 했고 가족들도 건강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아니다 싶었다. 몸이 붓기 시작하고 쉽게 피멍이 들었다. 눈도 충혈됐고 고혈압, 골다골증도 왔다. 순희씨는 병원을 찾았다.


둥근 얼굴에 체중늘어


그러나 의사들은 “별 것 아니다. 적게 먹으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한마디로 이상이 없다는 것. 용하다는 한의원에서 약도 지어 먹었다. 신경성이니 걱정말라고 한의사는 안심시켰다. 그러는 사이 2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순희씨는 자신의 몸에 확실한 이상을 느꼈다. 무릎, 팔 다리 등 관절이 있는 곳은 어디나 통증이 심했다. 배는 바람든 풍선처럼 불러왔다. 겨우 식구들의 손을 잡아야만 일어설 수 있었다. 단 1분도 앉아 있기 힘들었다. 154㎝의 키에 몸무게가 62㎏이나 됐다. 눈은 주위의 얼굴살이 부어 아주 작게 보였으며 목은 굻어지고 등은 앞으로 튀어 나오는 기형적인 모습을 했다. ‘이제는 가는 구나, 가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순희씨는 생각했다. “가더라도, 갈 때 가더라도 병명이나 알았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순희씨는 울부짖었다. 이제 막 제 앞가림을 하는 자식과 병수발 하느라고 지친 남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충남의대 병원에 입원해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곳에서 머리나 신상부위에 혹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쿠싱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때부터 순희씨는 발음 하기도 힘든 쿠싱증후군 환자가 됐다.
그녀를 검사했던 충남의대 내과 송민호 교수는 “순희씨는 한눈에 봤을 때 별 의심없이 쿠싱진단을 했을 만큼 전형적인 쿠싱병 환자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서울 중앙병원에서 신장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후 1년간 치료를 더 받았다.


신장 혹 제거 새삶


지금 그는 47㎏의 몸무게를 유지할 만큼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절망적인 순간이었기에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신과 함께 치료를 받았던 다른 쿠싱증후군 환자 2명은 뇌 종양 제거 수술후 사망했다는 우울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경북 청도에 사는 박말자씨(여50). 그녀는 건강했다. 그러나 30대 중반부터 관절이 아파 고생이 심했다. 진통제로 일시적인 통증을 막을 수는 있었으나 약 기운이 떨어지면 이내 다시 고통에 시달렸다. 아랫배도 아픔이 심했다. 산부인과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두통, 안면홍조, 요통도 참기 힘들었다. 몸이 붓기 시작한 것은 그 즈음 이었다. 딸인 인애씨의 말에 따르면 하루가 다르게 어머니의 체중이 늘었다. 어느날 몸무게를 재보니 74㎏이나 됐다. 159㎝ 신장에 비해 너무 체중이 많이 나갔다. 영남대병원에서 컴퓨터 단층 촬영한 결과 머리나 가슴부위에 혹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며칠 후 담당의사는 “신장에 종양이 있으니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런 저런 약을 많이 먹다보니 간장에 심각한 장애가 왔다. 의사는 “지금 수술하면 90%이상 사망한다”고 전과 다른 처방을 내렸다. 말자씨는 의사가 겁을 주며 간이 나으면 수술하자고 했던 그때 상황을 기억해 냈다. 한달 정도 간치료를 받고 간수치 검사를 하니 수술해도 좋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했다. 수술 후 그는 건강을 되찾았다. 말자씨는 순희씨 처럼 왜 신장에 종양이 생겼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순희씨는 “공무원인 남편(군인)이 전방에 있던 신혼시절, 얼굴의 여드름을 없애기 위해 스테로이드제를 과다 사용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근육위축증으로 고통


그러나 말자씨는 “감기약은 물론 어떤 약도 먹은 적이 없으며 술, 담배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하소연 했다.
40대인 전모씨가 서울대병원에 내원했다. 전씨는 병원을 찾기 2년 전부터 피로감과 전반적인 전신 쇠약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후 점차 심해지더니 얼굴모습이 둥글게 변하기 시작하고 가슴주위부터 얼굴에 이르기까지 여드름이 나타났다. 심한 비만과 함께 팔다리가 가늘어 지는 근육위축에 시달렸다. 목뒤에는 털이 많이 났고 내원 5개월 전 부터는 쉽게 멍이 들고 무월경 상태였다. 이 환자를 치료한 내과 김성연 교수는 호르몬, 흉부방사선, 경비기관지경을 통한 기관지세포 세척액의 ACTH수치, 경부 임파선의 조직학적 검사와 면역 조직화학검사 결과 전이성 기관지 유암종에 의한 이소성 쿠싱증후군으로 확진했다. 전씨는 현재 항암요법에 별 호전이 없어 케토코나졸로 고코티졸혈증을 조절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한 멍, 무월경


쿠싱병은 지난 1912년 쿠싱이 비만, 당뇨, 다모증 및 부산피질 증식증을 보이는 증후군을 보고한 뒤 세상에 알려졌다. 만성적인 당류 코티졸(스테로이드)의 과잉상태로 발병하는데 자연 발생적인 쿠싱병의 원인은 뇌하수체 미세선종의 부신피질자극 호르몬(adrenocorticotropin, ACTH)의 과다분비 때문이다. 이밖에 원발성 부신질환(부신선종, 부신암), 결절성 증식증 그리고 이소성 ACTH에 의해서도 발병한다. 인구 100만명당 1~2명의 발생빈도를 보이는 매우 드문 희귀질환으로 치료하지 않을 경우 고혈압, 당뇨, 호흡곤란 등 각종 합병증으로 발병 5년내에 사망한다. 지난해 대한내분비학외에 국내 처음으로 ‘한국성인 쿠싱증후군 환자 현황 및 임상양상’을 발표한 카톨릭 강남성모병원 윤건호 교수는 “조기발견으로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또 “원인이 다양한 만큼 정확한 발병인자를 찾아 그에 따른 치료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윤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88년부터 92년까지 진단된 환자는 모두 180명이며 이중 여자가 남자보다 3.5배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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