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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판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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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27:42

사람들은 팔자가 험악하고 사나운 것을 기구하다고 표현한다. 인생사가 기구하고 가족사가 기구하다고 말한다. 기구한 것은 소설 속의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기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도 건강때문에 기구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애처롭다. 가진 것이 없어 기구한 것이라면 혀를 차겠지만 몸이 성치 않은 것은 동정을 보낼 수 밖에 없다. 특히 남들은 걸리지 않는 유전병이나 희귀질환자들을 지켜보는 것은 동정의 차원을 넘어서 울컥하는 그 무엇이 있다. 현대의학으로도 뚜렷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키크고 손발 길어


안양에 사는 설동민씨(28)가족도 한평생 기구한 일생을 보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설씨는 한창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이렇다할 직업을 갖고 있지 않다. 직업은 커녕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겹기만 하다. 180㎝가 넘는 훤칠한 키, 언뜻보면 운동선수인 것처럼 건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희귀질환인 마르판증후군에 걸린 환자. 비쩍 말라 갸날픈 체격. 거미같은 긴 손발. 눈은 수정체 탈구 등으로 실명위기에 있다. 설씨 가족 1남 4녀중 1남2녀가 이 병에 걸려있다.
설씨의 큰 누나 요순씨(37)는 “우리 가족에게 닥친 운명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문을 열지 못했다. 요순씨에 따르면 아버지는 37세 되던해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며 사망했다. 오빠도 어느날 갑자기 숨을 거뒀다. 당시에 그녀는 아버지와 오빠의 사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젊은 나이에 멀쩡하다가 급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어요. 몇 군데 병원을 전전하면서 유전병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요.”당시 오빠는 평소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고 요순씨는 설명했다. 그러나 병은 이미 신체 여러 곳에 독을 내보내고 있었다.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부천세종병원에서 검진한 결과 심장판막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하기 위해 전북대 병원에서 날짜 까지 잡아놨으나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가슴이 아프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도 오빠는 그렇게 갔다.


갑작스런 사망


동민씨는 눈이 아프고 잘 안보여 강남성모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눈 수술을 했다. 의사는 심장쪽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넓어진 대동맥 대신 인조혈관으로 바꾸는 대수술을 했다. 현재 동민씨는 눈앞에 있는 반찬을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좋다. 어쩌면 영원히 세상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 동생을 요순씨가 돌보고 있다. 다행이 매형이 처남을 잘 이해해주고 있어 위안을 삼고 있다. 어머니는 정읍에서 혼자 살고 있다. 남편과 자식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남은 자식도 자신보다 먼저 보내야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화병때문이예요. 6남매를 키울 만큼 억척스런 분이셨는데 지금은 늙고 병든 나약한 몸이 됐어요.”자신의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할 수 없는 어머니를 보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요순씨는 말했다. 형편만 되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지만 지금 사정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요순씨는 “돈을 벌면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꿈”이라고 흐느꼈다.


3대에 걸친 불행


이들 가족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요순씨의 바로 밑 동생의 네 살 남자아이의 증세가 심상찮다. 비쩍 마른 몸에 키가 크고 손발이 긴 것이 틀림없이 동민씨의 어릴적 모습과 같다. 눈도 안좋은 것이 어쩜 그렇게 똑같을 수 있는지…. 3대에 걸친 불행. 조카는 15세가 되면 얼마가 들든 수술을 시켜줄 생각이다. 한달에 한 번 정도 검진을 받는 것도 벅찬데 수천만원이 드는 수술비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하다.
부산에 사는 조인기씨(23)도 마르판증후군환자로 판정됐다. 고등학교때 이미 187㎝로 반에서 제일컸다. 몸무게는 70㎏으로 전형적인 마르판환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씨는 98년 가을 어느날 가슴과 등, 배가 너무 아파 부산 침례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혈압이 크게 높아져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말판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급히 후송됐다. 엠블란스 안에서 조씨는 참기 힘든 가슴의 고통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 들었다. 가슴을 가르는 14시간 30분에 걸친 대수술을 했다. 수술후 의사들은 조금만 늦었더라고 사망했을 것이라고 조씨에게 설명해 줬다. 조씨는 지금 가끔씩 숨이 찬 것을 제외하고는 별 이상 증세는 없다.
그는 “큰 누나(27)도 자신과 같은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며 “만약 수술을 해야 한다면 엄청난 금액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다”고 힘없이 말했다..
조씨 가족은 2남 2녀중 2명이 환자이며 작은 누나와 형은 정상이다. 아버지는 33세때 갑자기 사망했다.


운동선수에 많아


마르판증후군(Marfan)은 결체조직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fibillin1 이라는 단백질을 형성하는 유전자의 이상으로 심혈관, 골격조직, 안구, 발가락, 관절 등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유전질환, 키가 크고 손발이 길어 운동선수가 많아 경기중에 급사하는 수가 있다. 국내에서도 한 배구선수가 운동중 사망한 예가 있다.
지난 1896년 프랑스 안토니오 베르나르 쟝 마르판이 환자를 처음보고해 마르판증후군으로 붙여졌다. 사망의 주원인은 심혈관계 이상. 대동맥 근위부의 확장과 판막변성에 의한 폐쇄부전 때문이다. 특히 대동맥 근위부의 확장은 환자의 60-80%에서 관찰되며 합병증으로 대동맥절삭이 올 수 있다. 심장판막의 변성은 주로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의 승모판에 발생하며 소아의 경우 대동맥 확장이 오기전 승모판 폐쇄부전이 먼저 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전자연구 기대


연세대 심장혈관센터 장병철 과장은 “의심되는 환자의 경우 심장초음파 검사로 마르판환자를 확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에서 심장판막과 혈관이 늘어나면 대동맥류, 대동맥 박리가 오므로 인조혈관으로 대체하는 수술로 치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혈관이 늘어나지 않은 경우 예방차원에서 혈압약 등을 복용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예방이 최우선이다. 급사를 막고 혈관의 크기를 체크해 수술할 수 있기 때문. 유전자 검사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이 대학 심혈관연구소 박현영 교수는 “모든 병이 그렇듯 마르판 역시 사전진단으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교수는 현재 말판환자들의 가계도를 그리는 작업을 거의 완성해 놓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유전여부는 물론 3천여명에 이르는 국내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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