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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산뇨증

  • 고유번호 : 581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26:12

깨져버린 장밋빛 신혼


얄미운 것이 운명이라고 했던가.
마산에 사는 박은민씨(31)는 해군제독을 꿈꾸는 송상래씨(32.해군대위)와 결혼, 슬하에 두 이이를 두고 있다. 한길(3) 한국(1)이 그들. 남편이 공무원으로 국가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시실이 가슴 뿌듯하고 아이들이 잘 커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박씨의 신혼은 장밋빛으로 가득찬 미래로 설레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런 희망도 잠시, 한길이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사라졌다. 한길이는 부모의 사랑을 알기전에 병원부터 찾았다. 호흡이 가쁘고 안색이 창백했으며 보통 아이와 비교해 힘이 없어 보였다.
담당의사는 폐렴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항생제를 투여 했으나 퇴원하면 바로 같은 증세에 시달렸다.
어느날은 호흡이 턱에 차 곧 숨이 끊어질 둣 했다. 어머니 박씨는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했다.
서울로 향하는 앰뷸런스안에서 3시간여 동안 내내 그녀는 ‘이 어린것과 영영 이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움이 복받쳤다. 곧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더 빨리 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고 비킬 줄 모르는 차들이 야속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 새까만 대변을 보기 시작했다.
병원은 뇌수막염일지도 모른다면서 복막투석을 했으며 MRI촬영을 했다. 그러나 뚜렷한 병명을 찾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춘천한림대 병원에서 소변으로 대사장애 여부를 검사한 결과 메칠말로닉 엑시데미아 판정을 받았다. 이때부터 한길이는 국내에 다섯번째 발견된 유기산뇨증(메칠말로닉엑시데미아, Methylmalonicaciduria,MMA), 프로피오닉엑스데미아, Propionicacidemia,PA)에 걸린 희귀질환자가 됐다.


“세상을 향해 소리쳐 봤다”
세 살이면 한창 재롱을 부릴 나이. 한길이는 겨우 뒤뚱거리며 한발짝 떼어놓을 정도. 엄마는 희미하게 부르지만 아빠소리는 내지 못한다.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것이 또래 애들보다 늦다.
여러번 혼수 상태에 빠져 뇌에 이상이 왔기 때문이라고 박씨는 생각하고 있다.
동생 한길이는 신생아실에서 찍은 사진으로 바로 형과 같은 MMA환자로 의심됐다. 폐가 까맣고 소변 검사에서 산(酸) 수치가 정상보다 높게 나타났다.
한명도 아니고 두명이나 희귀질환에 걸리다니 어머니는 하늘을 원망했다. 세상을 향해 소리도 쳐 봤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안다. 지금 그녀는 따뜻한 체온이 있고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세상 누군가는, 하늘아래 제일 사랑스런 아들을 고쳐 줄 것으로 믿고 있다. 어둠이 오고 또 하루가 밝으면 박씨는 희미한 한줄기 희망 찾기에 나선다.
한길, 한국 형제는 지금 비타민  B12, 일동제약에서 생산하는 심근대사장애 약인 앨칸과 도매상 화일약품에서 구하는 암모니아 수치를 낮추는 소디움벤조이드 그리고 없어서는 안되는 애보트 사의 특수 분유인 프로피멕스를 먹고 있다.
“척 보면 알아요. 잘 놀다가 갑자기 잠만 자거나 먹는 것을 거부하면 바로 응급실로 달려갑니다.”
먹은게 없는데도 위액까지 토해내고 헛구역질을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게 더 참기 힘들다며 그녀는 끝내 흐느꼈다.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드는 아이에게 해줄게 없는 어머니의 심정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다섯살이 돼도 차도가…
동해 바닷바람이 시원한 강원도ㅓ주문진에 사는 올해 다섯 살인 영진이는 유치원에 다니지만 빼먹는 날이 더 많다. 키가 좀 작고 뒤뚱거리며 걷기는 하지만 달리지는 못한다. 정상아 보다 지능이 낮다. 그러나 외관상 이상은 없어 보인다.
영진이 어머니 성화자씨(36)는 영진이 위로 두 아이를 잃었다.
91년에 태어난 첫 아이는 원주 기독병원에서 태혈증 진단을 받고 59일만에, 93년생인 둘째는 6개월만에 사망했다.
모두  MMA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오늘밤이 마지막이 아닌가. 제발 두달만 살아 줬으면, 6개월만 넘긴다면…’ 그런 영진이가 벌써 다섯살이다. “다섯 살만 되면 괜찮다고 했어요. 그런데 다섯살이 돼도 차도가 없어요. 담당의사에게 막 화를 냈지요. 나중에 알았지만 아무리 오래 살아도 다섯 살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판단을 한 것 같아요.”  그렇게라도 위로하고 싶었던 의술이 새삼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외국문서를 보니 16살 아이가 살아있는 경우가 있어 실오라기 같은 기대를 갖고 있다. 영진이는 책읽는 것을 좋아한다. 비디오나 음악도 즐겨 듣는다. 동요가 나오면 몸을 흔들기도 하고 중얼 중얼 따라 부른다.
성씨는 얼마전 청와대 등 관계기관에 편지를 썼다. 최근까지 무료로 공급되던 애보트사의 특수분유가 8월부터 유가화(有價化)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실장 이름의 답신은 고려해 보겠다는 의례적인 것. “특수 분유 없이는 애들이 하루도 견디지 못해요. 다른 대사장애질환은 정부지원이나 혜택이 있는데…” 성씨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녀는 회사원인 남편이 퇴근하면 한길이를 아빠에게 맡기고 어물전 청소로 일당을 번다.
4살 준섭이는 8명의 MMA환자중 상태가 가장 안좋아 일주일에 세번 축적된 산을 걸러내는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준섭이 위로 두 아이가 있었으나 모두 한달만에 잃었다. 준섭이 어머니 한미희씨(33)는 아이가 불쌍해 한없이 슬펐으나 지금은 당당히 현실을 받아 들인다. 전세에서 월세로, 다시 거리로 나안는다 해도 준섭이의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해볼때까지 해보겠다는 것이 한씨의 생각이다.


무료특수분유 이젠 사먹어야
이제 막 돌이 된 수현이는 PA환자로 위로 언니 둘은 정상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언니들이 수현이를 끔찍이도 사랑해 어머니 마음을 위로해주느 것이 기특하다. 수현이 어머니는 생활 형편이 어려워 8월부터 특수분유를 사먹어야 된다는 사실에 앞이 깜깜할 뿐이다.
14개월 된 민규도 수현이 처럼  PA환자로 진단 받았다. 일주일간 혼수상태여서 마음의 준비를 할 만큼 애를 태웠다. 다른 아이들처럼 단백질 음식을 피하고 특수분유로 체내 산의 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아버지 박중우씨는 “감기인가 싶으면 바로 증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감추기 보다는 드러내고 떳떳하게 민규를 키우고 싶어한다.
그래서 보호자 모임등에도 참석해 정보도 교환하고 여러 곳을 다니며 도움을 호소한다. 한 번은 2주 늦게 분유가 도착했다. 분유를 못먹은 민규는 손톱과 머리카락이 갈라지는 등 심각한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정부의 무관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박씨는 생각하고 있다.
국내에 20여명의 환자가 있는 유기산뇨증은 체내에 산이 쌓여 구토 신음 경련 근긴장저하 탈수 현저한 발육장애 등으로 대개 신생아때 사망하는 희귀질환.
연세대 의대 소아과 이진성교수는 “유전병인 유기산뇨증은 특별한 치료법이 없으며 앞으로 유전자치료법 등을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수분유 등으로 체내 산을 조절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법”이라고 덧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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