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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발성경화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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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23:43

운동선수의 좌절
칠순의 부모가 장성한 자식을 돌보고 있다. 한때 운동선수로 건강했던 자식은 이제는 거동조차 못하는 1급 장애인이 됐다. 장애인인 자식을 붙들고 부모는 오늘도 사투를 벌인다.
66세의 모친( 박영임.가명)은 팔을, 70세의 부친 (양팔호.가명은 몸을 잡고 딸을 들어 올린다. 몸무게는 보통이지만 제 힘으로 가눌수 없어 여간 곤욕이 아니다. 하루에 서너번 화장실을 가야 하는 딸을 위해 이들 노부부는 4년째 이런 전쟁아닌 전쟁을 되풀이 하고 있다.
올해 32살의 양정선씨. 중겙玆紵閨³ 시절 베드민턴 선수로 펄펄 날던 그는 오늘의 자신을 말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땅을 치고 밤 낮을 통곡으로 지새우는 짓은 이제 부질없는 일이다. 체념, 분노, 절망 그리고 한줄기 희미한 희망. 그는 안다. 희망은 없고 오직 절망 만이 그의 앞에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는 것을 . 서서히 죽어가는 육체는 이제 더 이상 세상을 향해 절규할 힘도 없다.
그가 할수 있는 것은 오직 숨 쉬고 눈 뜨는 일 뿐이다. 베트민턴 국가대표가 꿈이었던 정선씨.
힘이 좋아 활약이 대단했다는 아버지 양씨는 하필 우리딸에게 이런 불행이 왔느냐고 말을 잇지 못했다. 양씨는 내 나이 70 이지만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겠다고 흐느꼈다. 양 씨는 1남 4녀를 키우면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성실히 노력한 결과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울수 있었다. 특히 막내딸이 운동에 소질이 있어 대회에서 상도 타오고 해 집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5남매로 북적대던 양씨의 작지만 행복한 집은 이제 적막만이 감돌고 있다.


 화창한 봄날 덮친 병마


남자 친구도 만나면서 미래를 설계하던 정선씨에게 불행이 덮친 것은 25살 때인 어느 봄날.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던 화창한 오후, 멀쩡하던 다리에서 이상이 왔다. 저리는가 싶더니 땡기고 발가락에서 부터 저릿저릿 한 느낌이 연달아 왔다.
그는 언젠가 계단에서 넘어져 기브스 한 것의 부작용은 아닌가 의심했다. 선수 생활을 그만 두고 난 후 운동부족 때문으로도 생각했다. 그래서 헬스도 했다. 그런데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저릿한 기운은 이제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전해져 왔다. 안되겠다 싶어 국립의료원에 갔고 거기서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때부터 정선씨의 병원순례가 시작됐다. 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등 소문난 곳은 다 찾아 다녔다. 셀수 없을 정도로 피검사를 했으며 MRI도 숱하게 찍었다. 그러나 좋다는 약, 용하다는 의사도 정선씨의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주는 조그만 알약 몇 개만 먹으면 시체처럼 미동도 못할 만큼 약의 부작용은 심했다. 몇 시간 동안 움직일수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약도 먹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병은 더욱 악화됐다. 이제는 혀까지 마비가 와 말도 할수 없다.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종이에 글을 써야만 가능하다. 그는 벽을 의자 삼아 하루종일 기대는 삶을 살고 있다. 혼자 움직이기 위해서는 옆으로 비스듬히 쓰러진 다음 아기처럼 기어야만 가능하다. 한 숟가락 밥을 먹기 위해서는 떨리는 손으로 5분정도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고….
손을 흔들며 침을 질질 흘리는 딸을 위해 어머니는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죄인”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의 마비


박씨는 떡볶이나 김밥을 먹고 싶다고 서툰 글씨로 쓴 종이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눈물샘까지 말라 이제 더는 흘릴 눈물이 없을 것 같은데 이런 딸을 보면 어느새 눈가에 그렁 그렁 눈물이 맺힌다.
시집도 못간 처녀가 불치병에 걸렸다고 어머니는 민요를 부르듯 흐느꼈다. 밤새도록 손발을 주무르면서 피가 통하기를 고대해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제사지내는 것도 바꿨어요.” 영적인 힘을 받을까 기독교로 개종까지 했다고 양씨는 말했다.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는 고영란씨(34)는 31살 때 손가락에 이상이 왔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2-3일후 다리가 저리고 묵직한 통증이 기분을 묘하게 했다. 1주일 후 허리를 움직이는 것이 어렵게 됐다.
병마는 이렇게 순식간에 찾아왔다. 겨우 걸음을 옮길수 있을 정도로 상황은 악화됐다. 그런데 거짓말 처럼 상태가 좋아졌다. 걷는데 지장이 없고 달릴수도 있게 됐다. 행복은 잠시, 8개월 후 증세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정확히 몸의 왼쪽 부분에 마비가 왔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1년 반 정도 고생했다. 이 시기를 그는 “죽음과도 같은 기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기적처럼 또다시 병마가 물러났다.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할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스테로이드제를 매일 먹어 얼굴이 약간 둥그렇게 된 것 외에는 이렇다할 부작용도 없다.
그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고 있다고 말했다. “혼자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면 스스로 망가지게 된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큰일도 아주 작은 일이 되는것 아니냐”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언제 재발이 될지 마음 한편의 걱정을 지울수는 없다.
찾아올 불행을 미리 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 그리고 그 불행은 자칫 자신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릴수 있지만 영란씨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있다. 열심히 살면 아무리 ‘나쁜 피’라도 침범하지 못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행히 남편이 이해해 주고 격려해줘 위안을 삼고 있다.


   원인도 치료법도 몰라


원인도 없고 따라서 치료법도 없는 다발성경화증( MULTIPLE SCLEROSIS)은 말그대로 중추신경계(뇌와 척수)를 다발성으로 침범하는 염증성 질환.
생산연령층인 20-40대에 발병하며 남자보다는 여자에서 흔하다. 유전적 소인이 중요해 환자 가족에서는 발병위험률이 20배 정도 증가한다. 뇌에 침범하면 운동마비겲助樗孃?의식불명겭怜資墟溝樗Ì 나타나며 척수를 침범할 경우 팔다리 마비겙?♣鵑?배뇨 배변 이상이 온다. 시신경에 침범하면 시력감퇴겭側㉯孃Ö,심하면 실명에 이른다.
MRI로 확진할수 있으나 전형적이지 않다면 오진 가능성도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다발성경화증으로 진단을 받았으나 다른 질병인 것으로 판명돼 치료를 받고 예후가 좋아진 경우도 있어 정확한 진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뚜렷한 치료법은 없다. 그러나 스테로이드제와 면역억제제로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발병을 늦출수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김승민교수는 “급성기 환자에게 대량의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제를 일정간격으로 수일간 사용할 경우 뚜렷한 효과를 기대할수 있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또 “베타글로불린, 인터페론 등을 사용해 볼수도 있으나 가치가 입증된 치료는 아직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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