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피에르 로빈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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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52:12

아랫턱 없거나 갈라진 입천장 특징
초등학교 2학년인 김선화(8.가명)는 반에서 제일크다. 키만 큰 것이 아니라 몸무게도 34㎏으로 첫 번째다.
이처럼 체격이 좋은 것은 아무거나 잘 먹기 때문이다. 아침 상을 차려 놓기가 무섭게 선화는 밥 한그릇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엄마 또 밥”을 외친다. 한 살 터울의 언니는 아직 반도 먹지 못했다. 공무원인 아빠는 먹는둥 마는둥 하다가 출근을 재촉한다. 엄마와 언니는 문밖까지 나가 아빠를 배웅하지만 선화는 먹기에 바쁘다. 두그릇을 먹은 다음에야 선화가 일어선다. 밥을 먹었으니 세수하고 이를 닦아야 한다. 이 닦기를 싫어하는 선화를 붙잡고 어머니 박영자씨(37.가명)는 한바탕 씨름을 한다. 다음은 옷입기. 선화는 빨간색을 좋아해 다른 옷은 잘 입으려 하지 않는다. 빨간색만 여러벌 이지만 어제 빤 옷이 마르지 않아 박씨는 흰색의 브라우스를 선화에게 입히려 한다.


등교길 전쟁
선화가 거부한다. 힘이 얼마나 센지 박씨는 선화에게 밀려 뒤로 물러난다.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선화에게 브라우스 입히기를 포기한 박씨는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빨간색 남방을 선화에게 준다. 머리부터 집어넣은 선화는 혼자 힘으로 옷 입는 것이 벅차다. 어쩌나 보려고 한동안 내버려 뒀던 박씨는 지각을 염려해 옷을 입혀준다. 다음은 책가방 챙기기. 두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 박씨는 겨우 한숨을 쉰다.
매일 벌어지는 선화네 집의 아침풍경은 이런 모습이다. 벌써 수년째 벌이고 있는 일이라 이제 이력도 날만한데 박씨에게는 이 모든 것이 여전히 낯설고 힘들기만 하다.
창밖은 비가 오려는지 회색빛이다. 설거지며 집안청소등 할일이 산더미 같지만 박씨는 만사 제쳐 놓고 커피 한잔을 마신다. 생각하기 싫은 8년전의 일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아픈 과거가 아물지 못하고 덧난 현실이 마냥 슬프기만 하다. 27살의 한창 좋은 나이에 33살의 건강한 남편을 만나 결혼한 박씨는 행복한 신혼을 보냈다. 예쁜딸 선영이도 낳았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착실한 남편이 듬직했고 딸도 무럭무럭 자라줘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늦더위가 기승이 부리던 8월말의 어느날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선영이에게 솜사탕도 사줬다. 아장거리는 선영이를 보면서 부부는 함께 웃었다.
그리고 곧 둘째 아이를 가졌다. 출산일이 가까워 지자 간호사는 예쁜아기라는 말로 딸임을 암시했다.
아들 이었으면 했지만 딸이면 어떤가. 박씨는 10달만에 3.4㎏의 건강한 둘째딸을 낳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간호사의 안색이 어두웠고 의사는 아기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아기를 보는 순간 박씨는 소스라 치게 놀랐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딘지 이상했다. 특히 아래턱 부분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다. 벌어진 입 사이로 찢어진 입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것은 숨을 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잘 되지 않는지 얼굴은 금새 창백해져 갔다. 가슴 부분이 움푹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의사는 응급상황이라고 했다.


열달간 인큐베이터 생활
아기는 인큐베이터 속으로 들어갔다. 상자안에서도 아기는 제대로 누울수 없었다. 혀가 말려들어가 기도를 막기 때문에 항상 구부정하게 엎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박씨는 한 없이 울었다. 달래는 남편이 오히려 밉기까지 했다. 이런 일이 자신에게 닦치다니….
의사는 아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이 말은 아기와 영영 헤어지기를 바라느냐는 물음이었다. 박씨는 순간 뜨끔했다. 도둑질 하다 들킨 것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고 했다.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른 마음이 들었다. 저렇게 평생을 고통 받으며 사느니 차라리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해보는데 까지 해보자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 번 세상빛을 본 아기에게 깜깜한 세상으로 다시 보내는 것은 차마 할 일이 아니라고 아내를 설득했다.
박씨도 잠시나마 다른 생각을 한 것을 크게 후회하고 나에게 준 생명을 소중히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열달을 보냈다. 숨쉬기 위해 혀를 아랫입술에 붙여 놓은 것을 풀었다. 갈라진 입천장 부분도 붙였다. 그리고 퇴원했다. 수술자국이 있었으나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젖을 빨지 못했다. 주사로 우유를 먹였다. 우유꼭지를 찢어 흘려 넣기도 했다. 모진게 생명이라고 선화는 이런 힘든 과정을 견뎌냈다.
시간이 지나 선화는 네 살이 됐지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늦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동안 제호흡을 하지 못해 산소호흡을 했고 그 과정에서 뇌에 이상이 온 것이다.
의사는 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 박씨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선화가 말을 못하다니 그런 말이 세상에 있을수 있는가 생각했다.
열심히 가르쳤다. 늦었지만 말을 조금씩 했다. 엄마 아빠는 물론 의사소통도 가능했다. 그럼 그렇지. 박씨는 열성적으로 아기에게 말을 시켰다.
그러는 사이 선화가 일곱 살이 됐다. 학교에 보내야 했다. 주변에서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어렵지 않느냐고 특수학교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박씨는 근처 정신과에 선화의 지능을 체크 했다. IQ가 55로 나왔다.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특수학교에 보내려고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선화가 그곳에 갔다오면 이상한 행동을 따라하는 등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 같아서 일반학교에 보낼수 밖에  없었어요.” 박씨는 선생님이 선영이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배려를 해줘 그런대로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국어나 수학시간에 따라가지 못해 딴전을 피우기 일쑤여서 선생님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선화는 지금 잘 크고 있다. 외모만 본다면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 수술 흔적도 없다. 엄마를 닮아 웃을 때 보조개가 예쁘며 이목구비가 뚜렷한게 여간 귀여운게 아니다. 그렇지만 정신연령은 아직 네살에 불과하다. “ 처음에는 말만 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공부는 못해도 또래들과 어울릴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예요.” 어머니는 선화가 스스로 살아갈수 있을 정도면 된다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선화는 피에르로빈신드롬(Pierre Robin Syndrome) 환자다.
이 질환은 지난 1923년 피에르로빈에 의해 학계에 처음 보고됐다. 서울대 소아성형외과 김석화 교수는 “정확한 발병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어느 한가지 요인보다는 여러가지 이유로 하악골 성장 능력은 있는데 태내에서 외압으로  하악발육이 방해 받아 생기는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아랫턱이 아예 없거나 작아 혀가 뒤로 밀려 들어가고 입천장이 갈라지는 것이 특징”이라며 “신생아기에 발견해 수술을 해주면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응급상황이기 때문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위험하며 하악은 성장하면서 자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연히 좋아질수도 있다는 것. 그는 “한해에 한두명의 환자를 볼만큼 드물어 발병률은 수만명당 한명일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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