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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상세포백혈병

  • 고유번호 : 635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49:28

비장종대,혈구감소- 중년이후 다발
칠순을 넘긴 할머니는 인생이 기구했다고 스스럼 없이 말했다. 자신이 기구한 인생을 산 것은 다 팔자소관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이상필 할머니(가명.73)는 나이 스물에 결혼해 슬하에 4남매를 뒀다. 가진 것이 없어 늘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어렵게 살았다. 그래도 그때가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남들두 다 가난 했응께 그러니라 생각했지유. 호위호식 하기 보다는 삼시세끼 밥먹구 자식들 건강하면 그뿐이었지유.”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면서도 건강하게 커주는 자식들, 성실한 남편 때문에 사는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그래서 사람들이 오래 살려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것.
그런데 어느날 불행의 검은 그림자가 덮쳐왔다. 복에 겨우니 하늘이 시샘한 것이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저녁 준비를 하는데 아저씨( 남편)가 헤어지자고 했시유. 술도 못하던 양반이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해댔싸며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벼하고 고함쳐서 하도 놀래 그릇을 떨었치기 까지 했는디, 첨에는 귀를 의심했지유. 안 그렇컷유. 오순도순 잘 살던 남편이 뜬금없이 헤어지자니 가당키나 한 소리인감유.”
그때부터 할머니는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고 했다. 할머니의 기구한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남편은 14살, 12살, 9살, 7살 먹은 철부지 4남매를 남겨두고 훌쩍 떠났다. 어깨를 꼿꼿이 세우고 떠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할머니는 내가 무슨죄를 졌기에 이런 벌을 받아야 하나 하고 가슴 쳤다고 했다.


하늘도 시샘한 작은행복
남편은 땅 한마지기는 커녕 빚만 두고 사라졌다. 얼마 뒤 다른 여자와 결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는 기왕지사 일이 이렇게 된 것, 부자로 잘 살라고 기원 했다고 했다. 떠나고 없는 사람이지만 자식들 한테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 이므로 아버지가 돈 많이 버는 것이 자식들 한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하루종일 일에만 매달렸다. 일거리도 가리지 않았다. 식모는 물론 남자들 틈에 끼어 ‘노가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늘 먹는 것을 걱정해야했다. 그러니 자식들 가르치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나마 초등학교라도 마칠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쉼없는 노동 때문에 가능했다.
세월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자 차쯤 남편 없는 생활도 안정을 찾았다. 남편의 부재가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이 됐다.
자식들도 장성했다. 하나둘씩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손주들의 재롱을 보면서 이제 좀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옛날 일은 다 잊어 버렸다고 했다. 숱한 밤을 지샌일이며 아비없는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고 학교에서 울며 돌아온 큰아들을 붙잡고 통곡한 일들은 이제 잘 기억 나지도 않는다고 했다.
재산 하나없이 4남매를 홀몸으로 키웠는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하냐고 할머니는 허허롭게 웃었다.
조촐하게 칠순 잔치도 벌였다. 이제 이대로 죽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남은 소망은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것이라고 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동으로 단련된 신체는 할머니의 이런 소망에 부응이라도 하듯 감기한번 걸리지 않을 만큼 건강을 지켜줬다.  


배에서 만져지는 혹
그런데 덜컥 일이 터지고 말았다.
“기운이 없어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그냥 땅바닥에 주저 앉아야 했는디유. 조금 쉬고 나면 또 괜찮아 져유. 딱히 어디가 아프다는 곳은 없었유.” 
처음 증상은 이렇게 나타났다. 나이먹어 그런가 보다 여겼다. 그런데 정도가 심해졌다. 걷는 것은 물론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가슴이 떨리고 숨이 턱까지 찼다.
배에서는 혹 같은 것이 만져지기도 했다. 동네 병원에 갔다. 피를 뽑더니 3일만에 다시 오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여기서는 못고치니 다른 곳에 가보라”고 재촉했다. 그래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겼다. 또 피를 뽑고 이것저것 많은 검사를 했다.
결과가 나왔다. 모상세포백혈병. 할머니는 이 병이 무슨병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암으로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며느리가 왔다. 담당의사가 딸이냐고 물을 만큼 극진한 간호를 했다. 딸들도 울고 불고 하면서 병실을 떠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자기 때문에 돈 쓰는 것이 아깝고 매일 왔다갔다 하는 지친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안쓰러웠다. 이제 자신을 정리하고 싶었다. 잊혀졌던 옛날일도 생각났다. 다정했던 순간의 남편 모습도 떠올랐다. 그렇지만 곧 부질 없다는 생각을 했다.
“큰 아들이 아버지를 만났나 봐유. 죽기전에 한 번 보라는 뜻이겠지유. 나는 정이 없응께 보자고픈 생각이 하나두 없어유. 제자식 팽개치고 나간 사람이 무슨 낯짝으로 오나유.” 십수년 만에 본 남편은 그저 무덤덤 했을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죽을 병에 걸린 할머니를 외면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을 통해 살만큼 살고 있으니 병원비나 좀 보태라는 말에 아무 대꾸 없이 그냥 사라졌다고 했다. 혀꼬부라진 소리로 인연이 아닌가벼 하면서 떠났던 것처럼 그렇게 떠났다.


치료약  밀수로 국내반입
이제 남편도 봤으니 죽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어느날 의사는 치료할수 있다는 말을 했다. 미국에서 약을 가져오면 낫는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어느날 주사를 맞고 다리에 힘이 생겼다. 난간을 잡아야만 겨우 한발을 뗄수 있었는데 이제는 전처럼 오르막길도 오를수 있었다.
“그 영감보다 오래 살라고 그랬나 봐유, 죽고자 했는데 다시 살고 있으니 참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유.” 자식에게 부담 안주고 이렇게 살고 있으니 그동안 고생했다고 하늘이 도와주나 보다고 웃었다. 할머니는 6개월전에 약을 먹은 것 외에는 다른 치료없이 현재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만성비세포 백혈병의 일종인 모상세포 백혈병은 바이러스나 벤젠 솔벤트등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진 급성과는 달리 뚜렷한 발병원인이 없다.
미국인들에게는 전체 성인 백혈병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하지만 국내의 경우는 1%미만으로 아주 드물다. 중년 이후에 걸리며 유전과도 상관이 없다.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듯한 모양의 암세포라 해서 이름 붙여 졌으며 B임파구의 만성증식으로 비장종대, 골수 침범으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등 범 혈구 감소증을 보인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이홍기 교수는 “4년 동안 환자를 두명 봤을 정도이니 이 질환이 얼마나 희귀한지 알수 있다” 며 “원인은 모르나 치료법이 있는 드문 경우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클로로데옥시아데로신이나 2-데옥시코포마이신을 사용할 경우 치료가 잘된다” 며 “그러나 워낙 환자가 적어 수익성을 따져야 하는 제약사들이 외면, 현재는 밀수 형식으로 국내에 반입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비장절제나 인터페론 치료에 비해 혁신적인 치료약이 있음에도 환자수가 적다는 이유로 수입이 안되는 것은 정부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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