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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칠말로닉뇌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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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46:21

만성설사,뇌성마비 증세
무지개를 잡을수 없다는 것을 안 순간 백발이 됐다는 말은 희망을 잃었을 때 인간이 절망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희망이 없는 절망의 세상은 암흑이며 참을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혈육에서 희망을 찾을수 없는 절망 처럼 큰 좌절은 없다. 잡을 머리카락 한올 남아 있지 않고 희미한 가능성마저 사라졌을 때 이를 감내하기는 너무나 벅차다. 여기에 “솔직히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두 자녀의 어머니가 있다. 무려 7년동안 희망의 무지개를 찾았지만 끝내 잡지 못한 어머니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의 심정을 헤아릴수는 없을 것”이라고 흐느꼈다.
7살, 5살된 송유영, 송수희 자매가 그의 두 딸이다. 경찰공무원인 남편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던 김영숙씨는 큰 딸이 세상이 태어나면서 삶이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심하게 설사를 했어요. 하루에 20여차례나 설사를 하니 알만 하지요. 기저귀 사기도 바빴어요. 울기도 참 많이 울었구요. 너무 울어 신생아 실에도 있지 못했지요. 병원에서는 장염이라고 해요.” 집에온 유영이는 모유가 설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분유로 바꿨다. 조금 나아 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설사는 계속됐다. 계속된 설사로 몸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다.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 지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 되자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났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로 갔다. 그리고 폐렴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고칠수 없다고 했다. 단순한 폐렴이 아니고 기침을 하거나 힘을 주면 피부혈관이 터지는 복합적인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증상은 악화됐다. 울면 얼굴 혈관은 물론 온몸의 혈관이 터져 만지지 조차 못할 지경이 됐다. 주사바늘을 꼽기 위해 머리를 박박깎은 모습을 보는 것은 참을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유영이는 의식을 잃었다. 미동도 없고 눈도 뜨지 못했다.
어머니는 처음으로 아기가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죽은 듯 누워있는 유영이를 보며 면회온 친척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몸무게는 경우 6kg에 불과했다.
그런데 9일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친정엄마가 무척 기뻐했다.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동안 병원에서는 정확한 병명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저 감기가 악화된 폐렴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15개월에 다시 병원신세를 졌다. 느낌이 안좋다 싶었는데 어느새 호흡곤란이 왔다. 고대구로병원에 갔으나 한강성심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또 의식을 잃었다.
어머니는 “널부러 졌다”고 말했다.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눈만 겨우 살아 있었다. 일주일만에 장염진단을 받고 퇴원했다. “첫 아이고 해서 좋다는 것은 뭐든지 다 해봤어요. 먹기만 하면 낫는다는 한약도 엄청나게 먹었고 남대문 시장을 이잡듯이 뒤져 괜찮다는 약을 찾았으나 다 헛수고로 끝났다. 특수분유도 선식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렇저럭 세돌이 지났다. 혹시나 괜찮겠지 하는 희망도 잠시 97년 11월 다시 혈관이 터졌다. 고대 구로병원에 입원했다.


두자매에 닥친 불행
호흡이 돌아오자 치료할 길이 없어 다시 퇴원했다. 어머니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그러나 5개월 만에 나온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 사이에 둘째 수희가 태어났다. 수희는 언니보다 증세가 더 심각했다. 한 눈에 봐도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전체적으로 허약했다. 설사도 심했다. “건강한 둘째를 낳아 같이 놀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수희도 정상이 아니니 억장이 무너지지요.” 어머니는 둘째는 건강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했다.
수희는 31개월째 처음 입원했다. 역시 장염이니 대장질환이니 하는 아리송한 대답만 들었다.
“답답해요. 세상에 병명도 모르다니요. 그러니 치료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어머니는 서울대병원마저 고개를 젓자 이제는 만사 다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모성은 두 자매를 다시 병원으로 이끌게 했다.
고대구로병원에서 칼로 배를 가르고 조직을 떼내는 복부생검을 했다. 미국에 조직을 보내면 병명을 알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한달 후에 병원에서 검사결과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해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당시 1년차 레지던트는 3년차로 성장해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 보낸다던 조직은 보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왜 그랬느냐고 항의하자 그 레지던트는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의사는 여러 사람을 보니 한 사람에게 신경 쓰지 못할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환자 한명 한명이 다 소중한 것 아닌가요.” 어머니는 조직을 미국에 보내지도 않고 검사결과 이상이 없다고 통고한 병원이 그렇게 원망스러울수가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수희가 네 살 되던해 다시 고대구로병원에 입원했다. 새벽에 경기를 했다. 경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곧 의식을 잃었다. 눈이 말라 갔다. 꼭 죽은 사람 처럼 보였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10여일 만에 다시 깨어났다.
그때 고대안산병원의 한 의사가 보통 병이 아니니 아주대병원을 가보라고 소개해 줬다.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런데 이 병원의 복부생검은 아주 단순해 간단하게 펀치로 조직을 떼냈다. 하느님을 만난 것 같았다. 이제는 된 것 아니냐는 희망이 솟았다. 시야가 딱 트이는 기분을 맛봤다. ‘에칠말로닉뇌증’이라는 길고 낯선 병명을 얻었다.


희망과 절망 교차
한통에 15만원 하는 데카키논, 3만5천원 하는 하이본, 6만5천원짜리 엘캄을 먹였다. 시도 때도 없이 하던 설사가 잦아 들었다.
좋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완치되는 것은 아니다. 유지할수 있을 뿐이다. 여기까지 오기만도 얼마나 길고 험한 시간을 보냈던가. 그런데 유영이는 약을 잘 먹지 않아 걱정이다. 약을 안먹으면 구강궤양이 생기고 혀를 내민다. 그렇지만 제 힘으로 기어 다닐수 있다. 뻣뻣하던 몸도 조금 편안해 졌다.
수희는 여전히 나쁘다. 기지도 못한다. 하루종일 누워있다. 그래서 두시간 만에 한 번씩 몸을 뒤집어 준다. 유영이는 보라매공원내에 있는 복지관에 다닌다.
어머니는 희망이 없다가 다시 희망이 생겼으나 그 희망은 제한적인 것이라고 힘없이 말했다. 두 자매가 얼마나 오래 살지, 사는 동안 얼마나 더 고통받고 병원 신세를 질지 막막하기만 하다. 위로해 주고 성실하게 일해주는 남편이 고마울 따름이다.


비타민B2나 코엔자임 Q10
아주대병원 소아과 한시훈 교수는 “이 질병은 국내에서는 처음 진단된 아주 희귀한 질환으로 만성적인 설사, 혈관종, 뇌성마비와 같은 증세가 특징”이라고 말했다. 마이토콘트리아 이상이나 지방산 대사장애중 하나가 발병원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비타민 B2나 코엔자임 Q10으로 호전될 수 있다.
유기산 및 지방산을 분석하는 특수 기구로 진단할 수 있으며 MRI 소견은 전형적인 뇌성마비와 같다. 가족성이며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한다. 한 교수는 지난 3월 미국에서 열린 임상유전학회에 두자매의 임상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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