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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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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43:13

찬바람불면 손발색깔 변하고 마비증세


건강하지 못한 것 처럼 애처로운 것은 없다. 본인은 물론 주변사람들의 시선은  동정과 안타까움의 연속이다. 특히 식구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원인도 모르고 그래서 치료법도 없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불편하지만 죽을병이 아니라면 다행이다.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야 별것아니라고 자위하며 살아 갈수 있기 때문이다.


하얗게 변한손에 깜짝놀라
권봉순씨(63.여)는 이름 모를 병과 무려 10년이 넘게 싸우고 있다. 의사들도 속시원히 어떤 병이다라고 설명해 주지 않아 답답함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 말해줘도 잘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병명을 아는 것 자체가 귀찮아 졌다.
안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저 주는 약이나 먹는다고 했다.
“89년 어느날 이던가요. 잘 기억은 안나는데 그날 무척 추웠어요. 밖에 나가서 한참 동안 있었던 것 같아요. 문득 이상한 감촉이 느껴져 손을 보니 글쎄 하얗게 죽어 있지 않겠어요.” 권씨는 그때 당시의 일을 어제일 처럼 기억해 냈다.
꼭 죽은 사람 처럼 창백한 손을 보고 깜짝 놀라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따뜻한 곳에서 잠시 쉬니 어느새 빨갛게 혈색이 돌아왔다.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자식들에게 말 하려다가 괜한 걱정을 할까봐 그만두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별일이야 있겠나,솔직히 그런 마음이었어요.”


수영장에도 못가고…
실제로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 그런일이 있었냐는 듯 생활하는데도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잊고 지냈던 손의 이상은 찬물로 설거지를 하면서 다시 나타났다. 물에 담고 한 5분쯤 있으니 손끝에서 부터 회색빛을 띠더니 이내 마비됐다. 나중에는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근처 한의원을 갔다.
이때쯤 식구들은 어머니의 심상찮은 행동을 알아챘다.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 하면서 살다가 이제 좀 쉴만 하니 덜컥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됐다.
“혈액순환이 안돼서 그런가 보다 해요.” 한의사는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일단 한 번 약을 한재 먹어보고 나서 그때 다시 와보라고 했다.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그 한의원에 갔다. 그 사이 원장은 공부를 했는지 무슨 무슨 병이라고 하면서 여러달 한약을 먹으면 낫는다고 했다. 그러나 차도가 없었다. 여전히 밖에  나가거나  찬물에 손이 닿으면 손톱까지 노랗게 죽어갔다. 권씨는 찬곳에 나가면 손이 하얗게 되고 따뜻한 곳에서는 다시 제 색깔로 돌아온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리고 고칠수 있다고 장담하던 한의원을 다시는 가지 않게 됐다.
밖에 나갈때는 늘 장갑을 낀다. 그리고 찬물을 만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해 놓고 실천했다. 그러니 괜찮았다.
다 나았나 싶었다. 그래서 평소하던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한여름이었고 수영장 물은 미지근했다. 그런데도 손끝이 죽어왔다.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한참을 주무르자 혈색이 돌아왔다.
이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증세는 더욱 악화돼 손마디도 저려왔다. 발바닥의 통증도 심했다. 엎친데 덮친겪으로 남편마저 오랫동안 앓던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카멜레온처럼 변해
한약대신 양약을 한 번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몇가지 검사가 실시됐다. 고혈압에 협심증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무슨 증후군에 걸렸으니 절대 찬 곳에서 생활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래서 한 여름에도 망사장갑을 끼고 외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3년간 양약을 먹었다. 그래도 여전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손마디가 죽고 감각이 없는 마비증세가 나타났다.
“창피하지요. 다른 사람이 볼까봐 호주머니에 넣거나 손을 안 보여줘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했다. “임대사업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세무공무원이 찾아왔어요. 밖에서 잠깐 얘기하는 사이 열손가락이 노랗게 된 것을 보고 그 사람들이 기겁을 하더니 그냥 가데요. 우리는 6개월에 한 번씩 바뀌니까 신경쓰지 말고 병치료나 하라면서요. 제가 보기에도 노란 물감으로 손을 칠한 것처럼 그랬으니 처음보는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하지요.”
노란물이 드는것이 눈으로 보인다고 했다. 손끝에서 부터 마디로 이동하는 것이 꼭 물이 번지는 것처럼, 밀물이 몰려오는 것처럼 그렇게 빠르게 올라온다고 했다.
“한 5분정도면 세마디 모두 색깔이 변해요.” 권씨는 지금도 카멜레온 처럼 변신하는 자신의 손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자신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권씨는 한탄했다.
청주에 사는 박해영씨(65.여)도 권씨와 같은 증세로 고생하고 있다. 설거지는 물론 김장도 담글수 없다고 했다. 손이 시퍼렇게 죽어가기 때문이다.
30년이나 됐다는 박씨는 이제는 낫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고 했다. 죽는병이 아니니 그냥 참고 지내면 된다고 속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26살 때 첫애를 낳았어요. 그때 하혈을 많이 했는데 그후로 찬곳에만 가면 손이 퍼렇게 변하는데 아직도 똑같은 증세에 시달린다”고 하소연 했다. 어떤 때는 한여름에도 바람이 불면 손이 하얗다가 다시 노랗다가 퍼렇게 변한다고 했다.
시골이고 해서 병원에 가기 보다는 민간요법이나 한약을 주로 먹었다고 했다. 그러나 증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94년에야 어렵게 서울의 한 병원에 보름간 입원하면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세그린증후군, 전신성공피증 등의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신적경화증이라는 병명도 얻었다. 그리고 손색깔이 변하는 것은 혈액순환이 잘 안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약을 먹었다. 그렇지만 치료는 되지 않았다. 색깔이 변하면 통증도 왔다. 묵직한 통증이 쉴새없이 손가락을 타고 다녔다. 한참을 주무르고 나면 원래 색깔로 돌아오고 그러면 통증도 사라졌다.


평생‘레이노’증후군
레이노병은 일시적인 사지 말단의 허혈이 특징이다. 추위에 노출되면 손가락, 발가락 끝이 창백한 허혈증상이 오며 곧 퍼렇게 변한후 회복단계에서는 붉은색으로 바뀌게 된다. 일부 환자는 창백함과 청색증만을 보이기도 하나 청색증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원인질환이 없는 일차성 레이노증후군과 원인 질환이 동반되는 이차성 레이노증후군으로 나누는데 이차성의 경우 매우 드물다. 이차성은 피부경화증, 루푸스, 류마티스관절염, 동맥경화,동맥폐쇄질환, 폐동맥고혈압, 신경질환, 혈액질환등과 함께 동반한다. 이 경우 원인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세대 류마티스내과 이수곤교수는 “찬곳을 피하는 것이 일차적인 예방책이고 금연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톱이나 수동착암기 같은 공구를 사용하는 사람에도 가끔 발생하므로 생활환경을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치료는 약물이나 교감신경을 절단하는 수술적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 교수는 평생 이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한두번 증상을 경험하는 사람에 비해 매우 희귀하다며 정확한 발병원인은 밝혀지지 않아 완치할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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