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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게너 육아종

  • 고유번호 : 621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42:25

사랑하고 갈등하고 다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23살 꽂다운 나이에 28살의 건강한 남자를 만나 백년해로를 약속한 여인이 있었다.
사랑했으므로 결혼했고 때로는 인생이 지겨워 갈등했으며 이제 다시 사랑의 싹을 피우고 있다. 23살의 여인은 현재 45세의 중년 부인이 됐다.
결혼 후 10년간은 사랑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10년간은 고통의 시간이었으며 지금은 다시 사랑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충남 예산군에 사는 박호씨. 그는 아내를 사랑했고 이별을 생각했으나 다시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여자와 비교해 무척이나 체격도 크고 건강했던 아내 김철화씨의 발병이 갈등의 뿌리였다. 김씨는 36살이 되던 어느날 부터 코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찾았다. 천안 순천향 병원에서는 단순히 염증이 생긴 것이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약물로는 치료가 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코에 물혹이 생겼으니 수술하자고 했다.
세 번 수술했다. 생살을 긁어내는 아주 고통이 심한 수술이었다고 박씨는 그때의 상황을 전했다. 그런데도 코 속의 혹은 줄어들지 않았다. 의료진은 한번 더 수술 할것을 제의했다.


세번의 수술
아내는 이제 죽어도 이 병원에서 수술할 수는 없다고 버텼다. 진단도 내리지 못하는 병원에서 치료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친정이 있는 부산 고신대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악성종양으로 진단하고 이곳에서는 고칠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죽어두 여기서 죽자고 생각했슈, 어디 아는디도 없구유” 남편은 아무래도 좋으니 치료를 해달라고 애원했다. 의사는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세 번의 수술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코는 완전히 주저 앉았다. 몸은 대꼬챙이 처럼 말라가고 머리카락은 보름만에 한올도 남지 않고 다 빠졌다. 죽는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다른 삶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갈등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병약하다고 그의 사랑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눈에 핏발이 선 아내는 떠나달라며 애원하고 남편은 그럴수는 없다며 울부짖었다.
박씨는 먼저 자식들이 생각났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것들. 엄마는 저세상으로, 아빠는 자식을 버리고 떠나는 장면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두달이 훌쩍 지났다. 차도는 없었다.
주변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처가는 물론 남편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김씨와 같은 증상으로 사망한 사례가 있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어떤 식으로든 빨리 매듭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불현 듯 솟기도 했다. 그러나 질긴 것이 인간의 명줄이라고 아내는 생명의 끈을 놓치 않았다. “아마 좀더 사랑하고 살라고 그랬나 봐유.” 박씨는 그때일을 생각하면 꿈만 같다고 했다.


하루종일 마스크 착용
치료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더 악화되는 것도 아닌 어쩡정한 상태가 지속됐다.
남편은 한 번 서울로 가보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서울중앙병원을 찾았다. 8년전 이었다. 조직검사후 웨게너 육아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명을 알았으니 치료법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다. 담당의사는 전에도 이런 환자를 봤으며 치료한 경우도 있으나 죽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용기를 가졌다. 약물치료가 시작됐다.
증세는 호전됐다. 내려앉은 코를 세우기 위해 엉치뼈를 이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를 만드는데는 실패했다. 그렇지만 약을 먹으면서 생명을 건질수 있었다. “무엇보다 애들이 좋아했지유”. 코 없는 엄마, 불구인 엄마지만 하늘아래 엄마보다 자식들을 더 위해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김씨는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다. 코가 없어 바람이 갑자기 들어가는 것을 막고 보기싫은 모습을 감출수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아내지만 남편은 그가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지금도 두달에 한 번 정도 병원을 간다. 기관지 쪽으로 침범 했는지 검사하고 약을 타오기 위해서이다. 자신을 살려준 약이지만 약을 볼 때마다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은 어쩔수 없다.
약을 주는 의사도 될 수 있으면 먹지 말라고 말해 줄 정도니 전신 쇠약감은 물론 속을 긁어놓는 약의 독은 이해할만 하다. 그래서 머리가 띵하고 병세가 악화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올 때만 먹는다.
박씨는 일찌감치 병명을 알았더라면 코를 살릴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지울수 없다. 서울의 몇몇 변호사는 의료사고이니 소송을 하면 거액을 받을수 있다고 제의했으나 남편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의료소송 거절
의사가 실력이 없어서 였지 고의로 세 번씩이나 코를 긁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다만 그 병원에서 다른 병원을 추천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은 평생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27살된 김은아씨는 23살 되던해 후두부에 웨게너 육아종이 왔다. 가래와 감기를 달고 살았다고 했다. 거기다 목까지 아파왔다. 동네의원에서 염증약을 보름치 먹었으나 증세는 악화됐다.
엄청난 양의 가래가 나왔다. 새벽녘에는 특히 심해 두루마리 휴지를 하나 다 쓸 정도로 침을 뱉었다.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치료가 안되자 의사는 후두의 조직을 검사하더니 대학병원을 소개했다.
1년정도 약을 먹었다. 그리고 좋아졌다. 대신 달덩이 처럼 얼굴이 붓고 몸무게가 급속히 불어났다. 사람들은 사탕을 먹고 있느냐고 물었고 다이어트 하라고 충고했다. 다행히 악화되지 않아 병원신세는 안져도 됐다.
그는 평소 건강 했던 자신이 몹쓸병에 걸린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발병 6개월전에 한 개인병원에서 전신마취후 자궁물혹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잘못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웨게너 육아종(Wegener granulomatosis)은 코의 괘양, 상하기도의 혈관염과 괴사성 육아종,전신적인 혈관염,야간발한, 체중감소,국소적인 괴사성 신우염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지난 36년 프리드리 웨게너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코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나 두경부의 피부, 안와, 비강질환이 안와로 침범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간혹 귀나 성문하부 드물게 구인두 등에 온다.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 성인에서 발견된다.
서울중앙병원 이비인후과 김상윤 교수는 환자 치료는 내과의사와 공조하는 것이 중요하며 주로 폐와 신장에 침범하므로 이들 장기의 손상을 막으면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부신피질호르몬제 등을 사용할수 있다. 김 교수는 발병 5년후 70%의 환자가 생존하며 더 중요한 것은 점진적으로 진행하므로 최소 10년 이상 계속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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