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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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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병구 기자
  • 작성일 : 2007-02-11 10:39:11

온몸덮은 수포.진물처참한 모습


산 귀신의 형상
“백짓장 처럼 창백한 얼굴, 헝겁으로 칭칭 동여맨 온몸, 영화에서 본 미이라의 모습도 이처럼 괴상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길이 이처럼 처참한가. 뭐라 표현할수 없는 슬픔이 몰려 오더라구요.”
경남진해에 사는 양순영씨(50).
죽은 사람을 염하는 것처럼 자신은 살아서 염 당하고 있다며 몸서리 쳤다. “죽음도 예행연습이 필요한가요.” 의사는 3주가 고비라고 말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 걱정스러운 표정의 남편, 그 옆에 서있는 의사는 저승사자의 심부름꾼으로 보였다. 워낙 없이 살아서 남에게 베풀지는 못했지만 해코지 한 적은 없는데 나이 오십에 저세상으로 가야 한다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살고 싶어 몸부림 쳤다. 그렇지만 전신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은 환자처럼 살갗이 다 벗겨진 상태에서 패혈증까지 겹쳤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이제 명줄이 다한 것 같았다.
남편은 잠들어 있다. 조금 전까지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으나 지금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팔을 들기도 어렵지만 가만히 남편의 머리칼을 잡아봤다. 참기힘든 쓰라린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찡그려졌다.
스무살에 결혼해 30여년을 살을 맞대고 살아온 남편. 여고 졸업후 철없는 자신을 사랑해준 남편. 남들은  잉꼬도 이처럼 다정하지는 않을 거라며 부러워 했다.
너무 행복하니 신이 시샘한 것일까. 부부사이가 좋으면 한쪽이 먼저 간다더니 검은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해로 하지 못하고 헤어지는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왔다.
슬하에 3남매가 있지만 다 결혼해서 어미곁을 떠났으니 자식들 걱정은 없다. 다만 경찰 공무원으로 시도때도 없이 집에 들어오는 남편에게 누가 밥상을 차려줄까.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과거들이 스쳐갔다.
코 주위 발진
양씨에게 불행이 닥친건 5년전 어느날.
거울을 보다가 코 주위가 빨갛게 변한 것을 알았다. 겨울이라서 그런가 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상처는 낫지 않고 얼굴쪽으로 번져갔다. 연고를 발라도 낫지 않아 마산삼성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술을 많이 먹으면 빨갛게 되니 염려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보름치의 약을 줬다. 그러나 증세는 더 심해졌다. 처음에는 빨간 뾰루지 같은게 생기다가 나중에는 수포로 변하고 가려워 긁으면 물집이 터져 나왔다.
유명하다는 피부전문약국을 찾았다. 약사는 “신경성이다, 부부애가 나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어이가 없었다. 보기에 딱했던지 시누이가 레이저전문피부과를 소개해 줬다.  보름 동안의 치료로 증세가 호전됐다. 다 됐다 싶었으나 곧 재발됐다. 치료전 보다 증세는 더 심해져 온몸에 수포가 돋아났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피부조직 검사를 해보더니 낙엽상 천포창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제 수포는 엉덩이와 발, 등의 작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신을 덮었다. 머리도 빠져나가 대머리가 된 듯 했고 진물은 쉬지 않고 나왔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너무 흉칙했다. 병원에서는 부작용이 심한 경구용약 처방대신 연고와 물약만을 줬다. 약을 바르기 위해 옷을 벗으면 물집이 터져 진물이 쏟아져 나왔다. 따갑고 쓰라린 고통이 뒤따랐다.
약을 물에 타 온몸에 발랐다. 물이 조금차면 차다고, 뜨거우면 뜨겁다고 짜증을 내면서  고함을 쳤다. 그때마다 남편은 아무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러는 사이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병문안 온 사람들은 정말 본인이 맞느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간호사들의 안쓰러워 하는 표정에서 이제 곧 죽겠구나 하는 마음을 읽어냈다.
영동세브란스병원을 마지막으로 병원순례를 끝내기로 작정했다. 남편이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한 번만 가보자고 말했다. 또 약을 먹었다. 한 번에 한주먹씩 먹었다. 그러나 증세는 악화됐다. 상처를 본 의사는 이대로 퇴원하면 위험하다며 입원을 권했다. 8주간 입원했다. 균이 없어 감염되지는 않지만 전신에 약을 발라야 하기 때문에 하루 15만원 하는 특실을 썼다.
더 무서운 합병증
거즈에 항생제를 묻혀 온몸을 감싼채 30분간 있고 거즈를 풀고 다시 약을 바르는 일상이 되풀이 됐다. 한 번 약을 바르면 병실안이 진물과 약물로 범벅이 됐다.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병실 계단을 오르락 거렸다. 한 번은 운동을 하고 오니 온몸이 벌벌 떨려왔다. 열이 40도나 됐다. 합병증이 온 것이다. MRI 촬영결과 허벅지에 물이 찼다고 했다. 그 물을 주사기로 빼내어 배양했다. 정확한 항생제를 쓰기 위한 조처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패혈증이 왔다. 간수치도 엄청나게 높았다.
의사는 3주를 넘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가망이 없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맛있는 반찬이 상에 올라왔다. 맛있는 거나 먹고 죽으라고 친척들이 갈비며 과일들을 사가지고 왔다. 
잘먹어서 그랬을까. 조금씩 차도가 생겼다. 처방해준 약을 먹고 열심히 치료받았다. 영동세브란스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양씨는 회복되기 시작했다.
진물이 흐르던 상처가 아물고 그 자리에 딱지가 생겼다. 의사는 퇴원해도 좋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11월 단풍이 막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시작하는 차창밖의 풍경은 오십 평생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는 너무 가슴이 뛰어 연애시절의 감정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거의 완치돼 새 삶을 살고 있다.
희랍어로 거품을 뜻하는 Pemphix에서 유래된 천포창(天泡瘡,Pemphigus)은 피부와 점막에 수포를 형성하는 아주 드문 자가면역질환.
우리몸은 외부에서 온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한 항체를 형성해 이를 공격함으로써 피부를 보호하고 건강을 유지한다. 그러나 천포창은 항체들이 환자 자신의 점막과 피부를 외부물질로 잘못 알고 공격해 질병을 일으킨다.
정상적인 피부에 있는 상피세포는 교소체라는 구조가 있어 상피세포와 상피세포 사이를 단단히 결합시키고 있으나 천포창은 이 결합이 풀어져 표피내 수포가 생기고 이에따라 피부의 가장 중요한 보호기능이 소실돼 체액유출,세균감염등이 일어난다.
영동세브란스 피부과 김수찬 교수는 “이러한  천포창에는 심상성, 낙엽상, 종양수반성이 있는데 이중 심상성이 낙엽상에 비해 1.6배 정도 발생률이 높고 종양 수반성은 매우 드문데 발병할 경우 사망한다”고 말했다. 유전적인 소인이 크나 정확한 발병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김교수는 “60년대 까지만 해도 천포창 환자는 거의 죽었으나 지금은 의술의 발달로 치료의 길을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치료는 스테로이드제, 면역억제제 등을 환자의 상태에 맞게 적절히 투여해야 한다. 고혈압, 당뇨, 골다공증, 녹내장, 백내장, 전해질 불균형, 위염, 세균감염은 물론 혈구감소, 방광염, 불임, 소화장애, 간염, 탈모등  심각한 부작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혈장분리법,정맥내 감마 글로블린 국소요법 등을 사용할수 있다고 김교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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