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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떠오르는 얼굴

  • 고유번호 : 769
  • 작성자 : 김영임
  • 작성일 : 2007-02-12 07:21:57
요즘처럼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2년 전 지금쯤 그땐 그야말로 ‘신규’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한참 일에 대한 묘미를
조금씩 느껴갈 때였던 것 같다. 신증후군이라는 장기간의 치료를 요하는 중학교 2학년 여환
아가 나에게 인상깊게 다가왔다. 그 아이는 신증후군의 주 증상들을 그야말로 다 갖추고(?)
입원했다. 매일 검사하는 소변에서는 4+이상의 단백뇨와 2.0이하의 알부민 수치, 그리고 전
신적 부종….
한 달간의 스테로이드 치료가 끝났음에도 그의 증상들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급
기야 더 강한 면역 억제제까지 쓰게 되었다. 두 달간의 긴 투병생활과 호전 없는 증상들, 그
리고 외모적으로 나타나는 전신적 부종과 탈모는 그 사춘기 소녀에겐 큰 괴로움이었을 것이
다. 그런 중에도 부모간의 갈등은 그 아이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다행이랄까? 그 아이는 우
리 간호사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토요일 오후 시간이 날때면 간호사실에 찾아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그렇게 힘들어하며 지내던 어느 날 병원생활에 갑갑함을 느꼈던지 우리에게 바깥바람을 쐬
고 오면 한결 나아질 거라고 했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우리는 주치의를 포함한 몇몇 간호
사들과 함께 청평으로 놀러갔다. 아니 그 아이에겐 최초의 화려한 외출이였는지도 모른다.
청평에 도착해 우리가 주문한 특별음식(저염식의)을 그 아이에게 제공하고 멋진 라이브 공
연과 노을진 청평 호숫가를 보며, 그의 쾌유를 다 같이 빌었다. 혹시 혈압이 오르지나 않을
까 노심초사하며 혈압하강제와 혈압기를 준비하기도 하고…. 그렇게 그 하루의 멋진 외출이
끝났다. 그 후 기적이랄까?!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사랑의 힘이랄까! 단백뇨가 줄고, 부종이
가라앉고, 알부민 수치가 오르고….
그 후 그는 외래 치료를 기약하며 퇴원했다. 그해 겨울 다시 입원은 했지만 그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직접 컵으로 만든 산타할아버지를 병동 곳곳에 장식해 주었다. 퇴원 후
언젠가 전화가 와서 우리는 저녁을 함께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우리가 참 많은 도움이 되
었노라고 고마웠노라고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외래를 계속 다니고 있지만 외래에 오는 날이면 꽃다발을 사들고 병동에
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여름볕에 검게 그을린 그녀의 얼굴이 더욱 건강해 보인다. 이제 5년
차가 되어 가는 지금 나이팅게일이 매일 밤 등불을 들고 환자들을 돌본 것처럼, 나 역시 한
사람의 마음에 등불을 밝혀주는 간호사가 되자고 마음 속 깊이 되뇌어 보고, 오늘도 우리
환아들의 건강과 빠른 쾌유를 빌어본다.
김영임(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소아과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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