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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지만 간절한 꿈

  • 고유번호 : 767
  • 작성자 : 한상순
  • 작성일 : 2007-02-12 07:18:18

보름 전 6년 동안 몸담고 일해왔던 정형외과 병동을 떠나 이곳에 수간호사 발령을 받고 옮
겨왔다.
신장이 제 기능을 잃어 혈액투석기로 이틀에 한번 4시간씩 몸 안의 노폐물을 제거해주는 곳
이다.
투석해주지 않으면 바로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정말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현장이
다.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 조금만 양이 지나치면 금새 숨이 차고 힘들어져 119에
실려오기 일쑤다.
“수우, 간호사님! 나 OOO인데 수,숨이 차 모,못 견디겠어요”. 투석날짜가 아닌데도 투석해
달라며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전화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분명 또 과일을 많이 섭취했거나 음식조절이 힘들어 과식했으리라 짐작은 하면서도 어쩔 수
가 없다.
그리고나서 인공신장실에 들어설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생명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처
절한 모습이다. 몇시간 투석 후에는 가뭄에 단비 만난 듯 생기가 파르르 도는 모습에 안도
감을 내쉬기도 한다.
처음엔 이 생소한 기계와 온 몸의 피가 튜브를 타고 움직이는 모습 하나로 기가 질렸었다.
이론적으로 혈액투석이 어떻게 이루어지나 하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대하고 보니
그렇게 당혹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제 조금 기계와 친숙해지려 하고 있고 투석, 그 자체가 삶을 향한 예술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하루 세 번, 환자들이 바뀌고 이틀에 한 번씩 같은 환자들을 똑같은 시간에 만나니
인연도 얼마나 깊은 인연인가.
이제 차츰 이들이 나의 어머니, 형제자매처럼 느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평생 혈액투석으로 삶을 지탱해 나가는 이들에게 희망이 하나 있다면 신장 이식수술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다 가뭄에 콩나듯 이뤄지는 수술이니 누가 이식수술을 받는다고 하면 
이곳에서 그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며칠전 아침 투석하기 위해 기계조작을 하고 있는데 귓가에 들려오는 대화내용에 가슴이 뭉
클하며 코 끝이 찡해 한동안 뒤돌아 서지 못했다.
환자 중 한 명이 이번 9월에 동생으로부터 이식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대화 내용인즉
“자기는 좋겠다. 이런 고생도 이제 얼마 안남았네?” “글세...”, “자기는 수술 받고 나가
면 뭐가 제일 하고 싶어? 내가 만일 수술을 한다면 난 음료수를 한번 실컷 마시고 싶어”
“난 감자! 아니 과일 좀 실컥 먹고 싶어” 여기저기서 “난 짜장면” “난 옥수수...고구
마”...
이 얼마나 소박하지만 간절한 꿈인가.


한상순 경희의료원 인공신장실 수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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