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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의 마음으로

  • 고유번호 : 765
  • 작성자 : 노진경
  • 작성일 : 2007-02-12 07:17:25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초년병 때에는 작은 일에도 금방 가슴이 무너져 내리면서 큰 사건이
터진 건 아닌가 하고 마음 졸이기 마련이다.
나 역시 예외없이 간호사 일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가슴을 쓸어 내릴만한 일이 있었다. 몇 년 전 이 맘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
같으면 수술을 한 산모가 배가 아프다며 진통제를 찾는 바람에 지시를 받고 투약을 하는 등
의 간단한 일들이 산재해 있기 마련인데 유독 그 날만은 아무런 일도 없어 무료하다는 생각
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2인실에 있던 산모의 보호자가 ‘간호사! 간호사!’를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고 말았다. 담당 간호사인 나는 얼른 병실로 뛰어갔고 곧 어렵지 않게 나는 축구공만큼 부풀어져 있는 산모의 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왕절개 수술을 한 산모로 정맥주사가 조직속으로 밤새 들어가서 그 양만큼 부은 부위가 정말 놀랄만큼 커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얼른 죄송하다며 주사바늘을 빼고 알콜솜을 갖다 대었다.
병실에 들어 선 순간부터 시작된 보호자의 질타는 내가 처치를 끝낼 때까지도 그치지 않고 서서히 내 가슴에 못 박히고 있었다. 분노가 삭히기는 커녕 오히려 더해지면서 이번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더니 산모의 부풀어오른 팔과 내 명찰을 찍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이거 다 증거자료로 낼 거니까 각오하고 있어!’라는 경고까지 하는 것이었다.
놀란 가슴에 눈물까지 왈칵 쏟아지는 걸 꾹 참고 간호스테이션으로 가서 책임간호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겨우 1년차였던 나는 ‘정말 소송으로 가는 건가’ 하는 두려움에 떨고만 있었다.
곧바로 책임간호사는 보호자와 한참을 얘기했는데 내용인즉슨 그냥 죄송하다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다. 의외로 그 보호자는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겠다는 우리측의 입장을 이해하고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잠잠해진 보호자를 보낸 후 책임간호사가 내게 전해준 말은 지금도 내 간호사 생활의 모토로 삼고 있는 좌우명같은 것이다. “이런 일을 처음 당해서 많이 놀라셨겠지만, 소송을 거느냐 마느냐하는 선생님의 입장만 그렇게 생각해선 안돼요. 보호자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을 만큼 기가 막힌 일을 당한 것이 사실이구요. 더구나 그들은 우리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이구요. 뭔가 행동하고 반응에 옮기기 전에 먼저 상대 환자의 입장에 서서 가슴으로 느껴보세요. 진정한 간호란 그런 마음이 익숙해질 때 가능한 거랍니다.”
노진경 <포천중문의대 강남차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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