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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뒤돌아 보니

  • 고유번호 : 763
  • 작성자 : 성수민
  • 작성일 : 2007-02-12 07:16:51
응급실, 처음 내가 응급실로 발령이 났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걱정하고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난 걱정이 되면서도 한동안 인기리에 방여됐던 TV드라마 응급실
에서의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심폐소생술 장면과 먼진 의사들과 완벽해 보이는 간호사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도 유능한 응급실 간호사가 되고 싶은 욕심을 가졌었다.
2년전, 처음 출근한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중기 도르래에 머리를 맞아 얼굴이 형체도 없
게 찌그러진 환자가 실려왔다. 공포 영화에서나 보았던 그 끔찍한 모습에 몸서리를 치면서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라 허둥대던 신규간호사는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썩션해야 했다.
Hard 보드를 가져다 달라는 주문에 CPR 보드 대신 척추손상환자들의 매트리스 위에 깔아
주는 커다란 나무판을 낑낑거리면서 들고 나와서 혼이 나기도 했다. 여러 어려움 끝에 결국,
그 환자는 내 눈앞에서 처음으로 사망한 환자로 기억되고 있다.
응급실은 TV에서 보는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 할만큼 사건사고가
없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병실사정상 병실로 입원하지 못하고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
는 환자들도 많았다. 또 주말이나 밤이면 다른 1, 2차 병원이 문을 열지 않는 관계로 피치
못해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도 많았다. 개중에는 응급실에 오면 진료가 빠르다는 잘못된 인
식을 갖고 찾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응급상황도 아니면서 밀려드는 환자를 보면 짜증도
많이 났고 기대했던 만큼 해결이 빨리 안 되는 환자나 가족들의 불평에 시달리면서 응급실
이란 곳에 회의를 느낀 적도 많았다. 특히 거의 매일같이 심근경색이다 뇌출혈이다며 중한
환자들을 많이 보다보니 웬만한 통증 호소에는 무덤덤 해지고 냉정해지는 나 자신을 보면서
‘처음 마음먹었던 것은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고민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그 시끌벅적하고 삭막한 와중에도 급성장염으로 배가 아파서 오셨다가 금방 좋아져
서 가는 할머니의 아들이 굳이 사양해도 음료수 한 박스를 안겨주고 갈 때나, 열이 불덩이
같아서 축 늘어져서 왔던 아이가 생기를 되찾고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하고 꾸벅 인사
하고 나갈 때, 또 파랗던 얼굴이 핏기가 돌아온 환자 등을 보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을 줄 수 있어 뿌듯하기도 하다.
성수민<고대 안암병원 응급실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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