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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간호사

  • 고유번호 : 757
  • 작성자 : 박지윤
  • 작성일 : 2007-02-12 07:15:04

새벽 출근을 하면서 항상 병원을 바라보면 촘촘히 붙은 작은 창문 안으로 그 보다 더 작은
환자들이 저마다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을 사연을 가슴에 안은 채 누워있음을 상상한다. 종
양내과 병동의 환자들은 대체로 지극히 평범하고 순진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가끔 왜 이들
에게… 라는 원망이 생기기도 한다.
이들을 간호하면서 지켜볼 때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자식을 간병하는 보호자로서 어머니의
모습이다. 아픈 자식이 어린 아이이던, 수염이 굵게 자란 장성한 아들이던, 이미 아이의 엄
마가 된 딸이던, 에미의 눈에는 모두 다 내 새끼, 내 강아지인 것 같다. 오히려 침상에 누울
분은 주름이 굵게 패이고 허리 굽은 어머니 같은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존경스럽다.
암 병동의 특성상 청결과 무균술이 강조되는데, 한 어머니가 소독약으로 병실의 문고리까지
닦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 볼때, 자식의 손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어머니의 애간장이 타들어
갈 듯한 그 절절한 심정이 숙연하면서도 아주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죽음의 선을 순간 순간 넘나드는 환자를 보면 그들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를 시간을 가
족과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자기의 존재의미를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의 하루를 감사
하게 여기며 지낼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극도의 피곤으로 인한 무력감이나 육체적
통증으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은 이를 쉽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인간적인 죽음이란 어떤 것
일까? 인간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라는 질문이 생기지만 답 또한 쉽지 않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안에 작은 우주가 있고,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통해 자기의 세계가 더욱
넓어진다고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환자와 간호사, 가장 나약한 순간의 사람과 간호사와의
사이에는 분명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말랑말랑하고 푹신푹신한 밀가루 반죽 같은 관
계라고 하기보다는 감정이 없는 썰렁하고 딱딱한 플라스틱 같다. 우리는 스스로 보다 큰 세
계를 품을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를 바라보는 환자의 눈을 통해 간호사인 내 모습이 보인다. 환자는 나의 거울이다. 간호사
로서 10년 남짓 일을 하지만 아직도 미완성의 모습이다. 오늘은 병원을 향하면서 간호사로
서의 나의 역할과 의미를 생각하며 늘 환자 곁에 있는 어머니 같은 간호사가 가장 좋은 가
호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칭찬은 간호사답다라는 말이다. 간호사다운 간호사, 각자 나름대로
생각해야 할 의미가 아닐까.


박지윤(이대 목동병원 혈액종양내과병동 수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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