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라 빛 라일락꽃 향기가 ‘국립의료원 정원’에 그윽하던 지난 봄. 눈부신 봄햇살에 반 쯤 감은 눈으로 형형색색 피어난 봄의 꽃들을 바라보니.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중국 땅 연변에서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조상님의 나라로 무료 심장수술을 받으러 온 아 이들. 그 중에 유독 떠오르는 얼굴. 그 아이. . 태봉이. 태봉인 예정에 없는 길림성에서 온 아이였다. 거의 일년 내내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였다던 태봉이는 수술 후 죽어도 좋다는 엄마의 간곡한 청으로 더불어 오게 된 아이였다. 열한 살 이나 아주 왜소한 체격에 새 아빠와 함께 산다는 태봉인 유난히 말이 없고 수줍어했다. 심실중격결손과 함께 MR(승모판막 폐쇄부전증)도 있었지만 일차적으로 심실중격결손만 수 술받기로 하였고. 수술후, 여느 아이들처럼 완만한 경과를 보이던 태봉이는 어느날부터 숨이 차기 시작하면서 고열이 오르며 하루 수십 회의 물 설사에 조금씩 차오르는 복수로 배는 분만을 앞둔 산모처 럼 되었고. 각 종 혈액검사 수치는 그야말로 극을 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참 의약분업파업으로 시끄러울 때라 의사실은 텅 비었으며 패혈증세를 보이는 태봉이는 하루하루가 가파르기만 하였고, 한 겨울의 추위 따위는 느껴 볼 겨를도 없이 과장님, 소아과 선생님, 간호사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태봉이에게 매달려 증세가 호전되기를 기원하였다. 그리고 최후의 2차 수술 후, 죽음을 넘나들던 패혈증세는 조금씩 진정되었고 크리스마스를 앞 둔 작년 12월 태봉이는 보고싶어 울던 엄마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태봉이를 생각하면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에 자못 감탄과 함께 존경심마저 일며, 죽을 고 비에서 회복된 강한 생명력은 어쩌면 먼 옛날 우리의 옛 땅 고구려의 기상을 물려받은 강인 함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였다. 아직은 초췌한 모습으로 얼굴 가득 수줍은 미소를 띠며 그동안 받은 선물보따리를 챙기고 설레는 마음으로 손 흔들며 떠나던 태봉이를 보내고 나서야, 비로서 술 한 잔 하시면서 그 간 악몽까지 꾸었었노라 말씀하시던 흉부외과 과장님. 틈틈히 사경을 헤매이던 태봉이 보러 오시고 어루만져주시던 간호과장님. 먹고싶어 하던 된장찌게 보온병에 담아오고, 크기도 한 천자바늘에 계속 찔려 소리치는 모습에 눈물 뚝뚝 흘리던 햇병아리 간호사. 누런 색바랜 종 이에 미처 표현하지 못한 감사의 글 가득 담겨 날아온 편지... . 그리고 혹독한 그 겨울 동파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땡그랑 자선냄비 흔들어주시던 구세군 진 영. 그 냄비 안에 작고 큰 사랑 가득 담아 넣어주던 수 많은 사람들의 온정으로, 되찾은 조 선족아이들의 새로운 삶이 있어. 이 봄에. 라일락 향기로 취한 봄햇살 가득 받으며 생각하느니. 그래.. 이래서 ‘삶은 아름답다’ 고 할 것이다. 김혜자<국립의료원 흉부외과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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