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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 털리고 노숙자와 한잔

  • 고유번호 : 1133
  • 작성자 : 손상대 기자
  • 작성일 : 2007-02-27 20:48:23

(111) 값진 교훈


술취한 사람 길거리 다니기 겁나는 세상이 됐다. 자칫하면 생명까지 담보하고 술을 마셔야 할 형편이다. 술마시고 길거리에 누워 있던 사람을 유괴해 지갑을 털고 그것도 모자라 사람이 한적한 곳에다 버려 동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을 잡고보니 한 번도 아니고 수십 차례에 걸쳐 이런 짓을 해 억대를 갈취했다니 입이 떡 벌어질 뿐이다. 아마 이런 뉴스를 접한 주당선생들께서는 심장이 ‘쿵’하는 소릴 들었을 것이다. 술에 장사 없다고 어울려 마시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필름이 끊어져 낭패를 당한 경험을 한 번 정도는 가지고 있지 싶다. 이런 주당이라면 진짜 겨울 밤거리를 조심해야 한다. 돈 빼앗기고 두들겨 맞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염라대왕 초청장을 바로받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


후배 주당중에 결정적인 순간에 필름이 끊겨(서서히 허물어 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완벽하게 끊김) 집으로 가는 도중 뭐 하나라도 꼭 잊어버리는 씩씩한 의지의 한국인이 있다. 음주 후 휴대폰 분실은 밥먹듯 하고 심지어는 입고 다니는 양복까지 잊어버리니 이 어찌 한심할 노릇이 아닌가.
30대 중반이 넘어 장가라도 가 중심을 잡았기 망정이지 총각때는 반 김삿갓이었다. 하늘을 이불삼아 단잠을 잔 횟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집을 찾아갈 수 없어 여관방에 알코올에 젖은 육신을 맡긴 이력도 만만찮다. 이런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이 친구가 못된 인간들한테 걸리지 않았기 망정이지 제대로 걸렸으면 지금 얼굴보기 힘들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하기야 술취한 사람들 털어 먹고 사는 놈이 돈냄새 하나는 귀똥차게 맡는다고 아무나 손대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이 친구 지금까지도 지갑속에 카드나 돈은 절대 넣고 다니지 않는 독특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기에 그나마 화근을 면하고 살아가고 있지 싶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이 친구 지난해 말경 자정이 넘은 시간 술이 만취가 돼 모 역전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는 것이 그만 안방으로 착각하고 단잠에 빠진 것이다(이날 이후 이 친구는 새사람이 됐음).얼마를 잤을까, 춥다 싶어 벌떡 깨어보니 어이쿠 이런 일이 있을까. 양복 상위, 넥타이, 지갑, 휴대폰, 구두, 양말까지 누가 감쪽같이 가져간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바지는 안 벗겨간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한 자신을 발견했을 때가 새벽 3시경. 빈털털이가 된 이 친구 집에 갈 것을 포기하고 주변을 살피는데 벤치 밑에 다 떨어진 운동화 한 켤레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거라도 주워신고 역주변을 배회하는데 한쪽 후미진 구석에 노숙자 같은 사람들 3명이 쭈그리고 앉아 소주를 한 잔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쌀쌀한 날씨에 양복상위까지 잊어 버렸으니 그들이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지나가다가 잠시 걸음을 멈췄는데 한 친구가 노숙자로 보았는지 “어이 동지, 날씨 추운데 돌아나니지 말고 여기와 한 잔하시요”라며 한 말씀 던지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갈 수 없는 일 옛다 모르겠다 싶은 생각에 합석을 했겠다. 한두잔 주거니 받거니 해보니 인생무상이 가슴깊이 사무쳐 왔다나. 아무튼 사람이 한순간에 이렇게 망가질 수도 있구나 하는 큰 교훈을 얻었다는 이 친구 지금은 꼭 1차에 집에 가는 새사람이 됐다. 제발 1년이라도 가길 바라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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