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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탕한 마음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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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손상대 기자
  • 작성일 : 2007-02-27 10:44:01

(99)말재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하고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주당이든 주포스맨이든 천고마비는 이해가 되지만 독서의 계절과는 아마도 거리가 조금은 먼 것으로 사료된다. 남들 책 들고 놀 때 허구한날 술잔 들고 놀았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이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주워들은 귀동냥은 10권짜리 장편소설 읽은 사람보다 더 유식하고, 술판에서 털어놓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여느 책벌레보다 한 수 위를 자랑한다. 물론 완벽한 스토리는 모르겠지만 술판의 특성상 척하면 삼척 아니겠는가.


사실 책 몇줄을 읽고도 다 읽은 사람들보다 더 재미있게 이야기 한다. 어찌보면 베스트셀러의 작가를 뺨치는 업그레이드 된 구사력이 터져 나오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에는 재미있게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주당이 있기 때문이다.
‘인적재산이 가장 큰 재산이다’는 말이 있듯 주당들에게는 원작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무수한 이야기거리들이 있기 마련이다. 한달 전에 들었던 얘기 어제 듣고, 어제들은 얘기 오늘 또 들어도 여전히 맞장구를 치는 것이 주당들이다. 어 ∼어 하다보면 잊어버리고 한참을 듣다보면 들은 이야기인데 하는 것 또한 주포스맨들의 습관적 분위기다.


가을비 오는 날 걸죽한 술한잔 기울이면 귀가 쫑긋한 한시 몇 대목과 술에 얽힌 흘러 간 야담을 잘해주는 학자주당이 있는데 인기가 짱이다.
들으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뜻풀이를 하면 탁자를 탁쳐야 한다. 이 주당 이런 대화를 늘어 놓는다.
하루는 선비와 기생이 술자리를 같이하고 있는데 몇순배를 마신 선비가 기생이 너무 아름다워 음탕한 마음을 품고 ‘毛深內活 必過他人’이라고 한수를 던졌다. 속으로는 ‘네가 이 말의 뜻을 이해한다면 나에게 오늘 저녁 시중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며 꼴까닥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때 기생왈 ‘前園黃栗 不蜂之開‘요 ‘溪邊揚柳 不雨之長’이라고 하지 않는가. 선비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주당으로 따지면 한수 위였다. 딱 이 두 구절에 “음메 기죽어”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이 대화의 해답은 다음호에 풀이해 드리겠습니다) 당장 해법이 없으니 답답한 심정이 된 주당은 술에 얽힌 이런 고전 하나를 안주감으로 들려준다. 물론 술 예찬론이다.
사기에 이르기를 ‘郊天禮廟 非酒不饗/ 君臣朋友 非酒不美/ 鬪爭相和 非酒不勸/ 故酒有成敗而不可泛飮之’라.


이 말뜻은 이렇다. ‘교천예묘 비주불향’이라 하늘제사 사당제사에 술이 아니면 흠향하지 아니하고/ ‘군신붕우 비주불미’라 임금과 신하, 친구 사이도 술이 아니면 멋이 없고/ ‘투쟁상화 비주불권’ 싸운뒤에 화해하는데에도 술이 아니면 권할 것이 없다/ ‘고주유성패이불가범음지’라 그러므로 술은 일을 잘되게도 하고, 잘못되게도 하지만 함부로 마실 것은 못된다는 것이다.
술 마시느라 책 읽을 시간없는 주당과 주포스맨이여 올 가을에는 짧은 한문 몇 구절이라도 탐색해서 남이 들었을 때 그럴싸한 문장하나 만들어 봄직이 어떠한지. 기껏 한마디 한다는 것이 ‘개구리가 낙지를 먹으면 뭐가 되는 줄 아남유’해놓고는 정답은 ‘개구락지’다 하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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