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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적이요, 5과라…”

  • 고유번호 : 1109
  • 작성자 : 손상대 기자
  • 작성일 : 2007-02-27 10:43:07

(98)술판의 원칙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지어낸 말 중에는 홀수와 관련된 문장들이 많다. 이런 것들은 몇날 며칠을 고민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취중에 한말씀 한 것이 계기가 돼 작자미상으로 술판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다년간 술잔을 기울였던 사람들은 ‘술은 일, 삼, 오, 칠, 구로 마셔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한 잔 주면 정이 없고, 두 잔 주면 애정이 없길래 석 잔을 주는 것’이라고 한 사람도 있고, 술자리에 늦게 참석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처벌도 무조건 마시라는 것이 아니라 ‘후래삼배’라 하여 기분 좋게 퍼마시게 한다.


이런 음주문화 탓인지 우리나라 민중들의 대표주인 소주는 따르기에 따라 여섯잔도 되고 일곱잔도 된다.
일곱잔이 돼야 한잔 때문에 한병을 더 마시게되고 두병 때문에 세병으로 넘어가는 것이 술판의 흐름이 아니겠는가.
묘한 것은 이런 무원칙 중의 원칙이 소주나 맥주등에는 있어도 양주에만은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만약 고급양주를 이처럼 객기를 부리다가는 아마도 기둥뿌리 하나 정도는 날아가기 십상이기 때문에 자제하는(주당 중에는 양주판에서도 이런 논리를 접목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봄)것으로만 믿고 싶을 따름이다.


비록 값싼 술을 마시지만 그나마 민초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것이 명문화 되지 않은 술판의 룰이 아닌가 싶다. 강요하는 사람이나 강요받는 사람이나 모두 기분 나쁘지 않게 누군가 참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사람중에 나도 끼어있다.
얼마전 전라북도 장수를 방문한 길에서 몇몇 주당선생들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장수의 대표주 오미자 술을 한 잔 할 기회가 있었다. 색깔 곱기로서니 홍조빛 띤 논개의 얼굴이 어찌 오미자주를 따라 오겠는가. 잔에 부어놓은 그 색깔이 너무 고와 재빠르게 입속으로 내동댕이 치고 싶은 마음까지 들기에 충분했다.


흔히 주당들이 만나 몇순배 돌아가면 머리를 꽉쪼이던 나사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두잔을 마시고 술잔을 마다하는 주당선생이 있길래 내가 한말씀 올렸겠다 “살아도 석잔 죽어도 석잔이라는데 어찌 두잔으로 마감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자 한잔 더 받으시요”라며 술잔을 건넸다.


그때 석잔을 받던 주당선생께서 왈 “삼적이요”라며 한수를 날리지 않겠는가. 나는 삼적을 산적으로 잘못듣고 ‘아 저 선생께서 나를 살아 있는 적으로 생각하고 있구나’로 해석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막 꼬리를 감추기도 전에 그 선생 왈 “삼적은 석잔이 적당하다는 것입니다”라며 뜻풀이 까지 해주지 않겠는가. 갑자기 궁금증 유발, 원문해독의 지령이 대뇌에서 입으로 전달됐다.


나는 재빠르게 “그럼 다섯잔만 하시요”라고 하자 이번에는 “5과라”하면서 사양하는 것이었다. 헤어지면 이 또한 버려질 지식이 될 것으로 사료된바 메모지와 펜을 내밀고 원문을 적어 달라고 애원했다.
그가 적어준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소, 3적, 5과, 7취, 9토, 11사’ 그뜻은 ‘한잔은 적고, 석잔은 적당하고, 다섯잔은 과하고, 일곱잔은 취하고, 아홉잔은 토하고, 열한잔은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잔이 소주잔이 아닌 맥주잔으로 소주를 마셨을 때라나. 푸 하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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