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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술 한잔 사주면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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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손상대 기자
  • 작성일 : 2007-02-27 20:58:04

<124>어설픈 작업(上)


“여보세요! 지금 우산도 안쓰고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이것 나요, 왜 이러세요, 나 술취한 것 아니예요.”
봄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부산진역 옆 지하 호프집 입구, 시간은 7시30분경.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아가씨 한명이 우산도 쓰지 않은채 그냥 비를 맞고 있다.
마치 술에 취해 벽에 기대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도 자신은 술 취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하여간 여자는 술에 취했건, 누더기를 입었건 예쁘고 볼일이다. 그래야 멀쩡한 늑대들도 군침을 삼키기 때문이다.


몇주전 주말 볼일 때문에 부산을 갔을 때 일이다. 부산 선후배 주당들의 한결같은 환송에 힙입어 부산진역 인근 모호프집에서 선후배 5∼6명이 둘러앉아 오랜만의 회포를 풀고 있었다.
밖에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이따금씩 호프집 천정을 타고 흘러 내리는 뽕짝 가락은 주당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몇 년만에 만난 선후배들이라 할말도 많았건만 역시 술자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논란거리는 여자들 얘기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한참 무르익을 무렵 건강보험재정건전화자금 입금차(담배 구입차) 슈퍼에 간 후배놈이 밖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00수 선배에게 긴급타진을 해왔다.
“형 밖에 나와보이소, 얼굴 반반하게 생긴 여자 아이가 우산도 안쓰고 비를 맞고 서 있십더, 혹시 호프집에 손님이 두고간 우산 있으면 하나 가지고 나와보이소.”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텐데 기꺼이 보살피려 했던 것은 후배의 흑심이 아니라 애처러운 모습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순정파 의리꾼의 특성 때문이다.
보통 주당들 같으면 혹시나 하고 접근했을텐데 후배녀석은 진짜 비맞고 선 모습이 애처러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옛 속담은 조금도 틀린 것이 없었다. 물에 빠진놈 건져 놓으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더니 그날 결론은 속담대로였다.


후배가 우산을 씌워주니 그때서야 하는 말 “오빠 죄송한데요 저 술한잔 사 주실 수 없나요”였다.
마음약한 후배 이런 청 하나 못들어 줄까 싶어 그 여자를 우리자리로 모시고 왔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 내리는 빗물이 움푹패인 가슴중앙을 타고 꼬리를 감추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지 후배녀석 카운터로 가서 수건 하나를 빌려왔다.
머리와 얼굴을 닦아주고 젖은 옷을 수건으로 문지르는데 이 여자 왈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은요 오늘 사랑했던 애인으로부터 배신당해 죽고 싶은 심정에 혼자서 술 몇잔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오빠들께 실수를 했네요.”


그 여자 목소리는 부산도, 경상도 사투리도 아닌 서울말투 였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자하면 군침을 곧잘 삼키는 선배 한명이 “괜찮심더, 우리가 오늘 친구 해줄텡게 멋지게 한잔 합시더”라며 바로 작업에 착수하는 듯한 비수를 던졌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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