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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에 홀려 지갑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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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손상대 기자
  • 작성일 : 2007-02-27 20:52:36

<117> 전철안에서(下)


이제 20을 갓 넘겼을까 얼굴에는 ‘나는 영계요’라는 브랜드가 선명하게 각인돼 있는 듯 했다(보통 남자들은 술을 퍼마신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자들이 더 예쁘게 보임). 처음에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실수와 용서의 토론을 벌이다가 급기야는 남자와 여자의 본질적인 현실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어디에 사느냐, 무슨일을 하고 있느냐, 결혼은 했느냐, 몇살이냐 등 평균작 질문에서 그 여자가 23살의 꽃띠임을 밝히자 아저씨에서 곧바로 오빠 동생이 된 것이다. 옛말에 과대한 친절을 배푸는 사람을 조심하라 했건만 이 친구 여우의 마술에 걸려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소주 두병정도가 비워질 무렵 이 아가씨가 앞자리에서 옆자리로 자리를 옮기더니 애교까지 떨기 시작했다. 약간 발가스레한 얼굴을 가슴에 묻고 “오빠 참 좋은 사람이다, 아까 다른 사람같으면 어쩔수 없이 일어난 일이니 도리어 화도 낼수 있었는데”하면서 서서히 60만대군 비상계엄령 발동에 시동을 거는 것이었다.


엥기는(안기는)여자 마다할 남자 없다고 심장 옆에 숨어 있던 늑대 심보를 서서히 꺼내가면서 분위기를 유도했다(남자들의 습성은 여자가 엥기면 골인까지 무난할 것으로 일단 판단하는 경향이 있음).
“야 아까 너 가슴 만져보니 백만불 짜리더라, 너 수퍼모델이나 한 번 해보지”하면서 일단계 추켜세우기 작전에 돌입했다. “얼굴이 예쁘다” “피부가 곱다” “손이 너무 곱다” “눈이 너무 초롱초롱하다” 뭐 입안에서 사탕발림 할 수 있는 단어는 모조리 꺼내다 진열 시켰다.


1단계 작전이 성공했는지 아니면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는 진리가 통했는지 얌전해 보이던 이 아가씨가 “오빠 나 거시기 크다고 생각하나, 한 번 만져볼래”하면서 불쓱 가슴을 내미는데 심장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주 3병이 날라져 왔다. 분위기 압도당해 마신술이 혀말리기를 시작했고 가끔씩 앞에 놓인 소주잔이 두 개로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여전히 오빠의 엉덩이를 만지작 거리는가 하면 중앙청 부근 다리를 살살 간지럽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이정도면 됐어 알콜에 절은 뇌를 두바퀴 반 돌린 끝에 내린 결론은 나가면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잘됐다. 누가봐도 그럴듯하게 분위기가 무르익었겠다 차려진 상에 젖가락만 들고 퍼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순간 아가씨가 담배 한갑 사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새벽 1시30분이 넘도록 돌아 오지 않았다.
망쳤구나. 너무 뜸들였구나. 후회와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려는 순간 바지 뒤쪽이 허전했다.


깜짝놀라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지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세상에 바로 그여자가 쓰리꾼(소매치기)이었던 것이다. 술집아주머니에게 내일 반드시 주겠다며 백배사죄하고 빈몸으로 택시에 올라탔다. 당연히 택시비는 집사람이 냈다. 그리고 집나간 지갑은 그 이후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 주당에게 이렇게 외쳤다. “이 삽자루(바보 보다 한단계 아래 수준)야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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